소설
4.
시간 속에서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가위질을 하며 또 다른 시간을 보냈다. 가위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생명이자 절정이었다. 손으로 가위를 쥐었을 때 비로소 그녀는 생명수가 몸 안을 휘휘 돌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가위는 손잡이와 자르는 부위가 붙어있는 세라믹 재질의 일체형이었다. 겨울에 차가운 가위를 움켜쥐었을 때 전해지는 서늘한 기운은 그녀를 깨워주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가위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자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가위는 자애와 믿음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가학과 자해도 지니고 있었다.
굽어있는 오른팔로 가위를 들고 오랜 시간 동안 가위질을 했다. 팔이 불편해서 처음에 가위질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겨울의 가위질은 조금만 손에서 멀어지면 가위는 금세 서늘하고 차갑게 변해있었다. 도화지를 오리고, 색종이를 오려서 붙였다. 좀 더 두꺼운 마분지를 가위로 오렸다.
양면성의 시간이 흘러갈수록 가위는 그녀의 편이 되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종이를 마음껏 오려주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는 그녀의 무릎에 햇살이 내려와서 가위를 비추고 있으면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가 청각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미약하게 들렸지만 사라 맥 라클란의 엔젤을 언제나 들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또 다른 공명과의 싸움이다. 눈을 감아도 밝은 빛 때문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고요한 그녀의 마음에 이명이 일 때면 그녀의 마음은 부서졌다.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리지 않는 귀로 똑똑히 들었다. 가위를 뺨에 대어 보았다. 차디찬 그 기운이 뺨을 통해서 핏빛 가득한 혈관에 전해져 왔다.
가위는 새것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아주 잘 갈려져 있었다. 날카롭게, 아주 날카롭게. 차디차게 날카로웠다. 청각이 거의 소멸될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옆에 가위만 있어주면 돼. 다 내려놓고 나니 감금에서 더 이상 소통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통은 순간으로 끝이 날것이다. 가위를 들고 가위의 날을 세워 손등을 잘라보았다.
금세 손등은 한줄기 피로 번졌고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비명을 듣고 싶었다. 고통에 의해 내뱉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고 싶었다. 어떤 소리일까. 어떻게, 어찌 들릴까. 어떤 이명으로 다가올까.
소통에 대한 그녀의 지향성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