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8.
아닙니다. 종삼으로 가자는 얘기였습니다.라고 ‘안 형’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안 형’이라는 그 사람에게 미소에 경멸을 섞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우리는 어딘가 갈 곳을 잃은 채 거리를 헤매다 화재가 난 곳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갈 곳도 없고 화재가 난 곳에 페인트든 통을 하나씩 깔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습니다. 저는 불이 빨리 꺼지지 않고 좀 더, 길게 하루 종일 타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안 형’이 말했습니다.
화재는 자신의 것도 아니며, ‘김 형’의 것도 아니며, 나를 보며 아저씨의 것도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고쳐서 말을 했습니다.
‘안 형’은 잘못 말했다며 화재는 화재 자신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갑자기 일어나서, 내 아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날름거리는 불기둥은 저의 아내였습니다. 불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막 흔들리는 것이 제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내가 머리가 아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이리저리 마구 흔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앉히며 진정시켰습니다. 내가 실성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 교류를 하던 몇몇의 동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무들에게 저의 본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나와 나의 동무들 사이에는 위트가 숨어 있어서 나의 모습을 교묘하게 가려 주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변변찮은 집에 동무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잘 웃기에 동무들에게도 잘 웃어 주었습니다. 그 웃음을 보는 동무들의 눈빛에 그들처럼 여자들의 특징만 중점적으로 내보이는 여자들을 찾는 깊은 어둠의 음란한 웃음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동무들 역시 위트로 자신을 숨기고 나를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동무들 중 한 놈은 귀가 곪아서 고름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임에도 아내가 앉아 있는 나의 집 방에서 마다하지 않고 술잔에 술을 부어 마셔댔습니다. 그럴수록 아내는 더욱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아내의 특징이었습니다. 언제나 잘 웃는다는 것 말입니다.
저는 그때 아마도 몹쓸 마음을 먹었드랬습니다. 동무들이 내일 죽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서울의 전동차에 끼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죄악의 인간입니다.
후에 전보를 받았습니다. 곪은 귀를 가진 그 동무는 부산에서 뱃일을 하다가 곪은 귀를 치료하지 않아서 염증이 온몸으로 퍼져 고통 속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동무와 저 사이의 위트가 사라진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