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았다 4

소설

by 교관


4.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보도록 해.


그래.


바다는 말이야, 큰 그릇이 아니야, 빈 그릇이야.


응?


등대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등대는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지?


1962년.라고 등대는 대답했다. 그 대답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62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지?


글쎄, 난 이곳에 언제나 있어서 잘 모르겠군. Hey joe?


헤이 죠는 그 이후일 거야. 왼손으로 기타를 그렇게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해였지.

등대는 자신의 착오에 순응했다.


Hey jude?


헤이 쥬드도 헤이 죠와 같은 해일 거야. 62년도는 비틀스가 탄생된 해.


넌 어째서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 등대는 조금 씁쓸하다는 듯 말했다.


기호야.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묵직해서 그 틈을 갈라놓은 그 무엇도 생성되지 않았다.


영원한 건 없어.


그래 맞아.


바다의 선이 자아내는 저곳에서 황혼이 지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마술처럼 푸른색과 자주색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엑토플라즘처럼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 하는 오락이 금방 끝나듯 어둠은 바다의 하늘에 별들을 띄워 올려 검은빛으로 빛나게 만들었다.



소년 시절에 등대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미풍을 맞이했다.


바다를 재우려고 바람이 사라졌을까? 나는 오랜만에 찾은 등대를 보며 말했다.


사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바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바람이 사라진 진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니까. 등대는 조용하게 말했다. 등대는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소년 시절에 등대를 찾았을 때, 그때의 기품 있는 등대의 모습은 이미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줄었어. 이제 등대를 찾는 사람들이 없어,라고 등대가 말했다.


바람이 소멸한 후?


등대는 한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등대 역시 바람이 사라지고 난 후 구체적인 고립을 맞이했다. 등대는 그 변화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의 고립이 깊어지면 점점 인간성을 갉아먹는다. 야금야금, 조금씩 먹히다 보면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를 넘어서 제정신일 때와 제정신이 아닐 때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 내가 처한 이 현실이 악몽인지 악몽 때문에 일어나는 현실인지 균형을 잃었다. 등대는 점점 붉은색이 탁해지면서 바닥에 손바닥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계속 문질렀다. 등대는 몸에 낀 녹을 다 닦아내고 나면 다음 날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나중에는 이 일을 좋아하게 될 거야. 반복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될 거야.


등대는 그렇게 고독과 물아일체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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