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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6. 2023

7일을 보낸 방 6

소설


6.


 여섯째 날.


 추워서 잠을 깬 그 새벽에 나는 방이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서로 엉겨 붙어 자고 있었지만 그들의 머리맡에는 영혼이 부서지는 소리가 보였다. 분명 안타까웠지만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일어나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불 없이 잠들어 있었기에 곧 냉기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마치 온몸을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겨울 산행의 텐트 속에서 야영을 하다가 일어난 것처럼 몸의 이곳저곳이 제멋대로였다.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4시다.


 그때 눈에 들어온 천장의 모습은 어떤 형상에 눈알이 몇 십 개 박혀 있었고 중간에 큰 아가리가 붙어있었다. 아가리에서는 포그가 흘러나오고, 흘러나온 포그는 잠든 사람들의 영혼을 산산이 부서지게 했다. 여러 개의 눈 중에서 몇 개의 시선이 방안의 난방을 하고 있는 스위치에 멈추더니 이내 온도계의 온도가 내려갔다. 천장의 아가리로 사람들의 부서진 영혼의 조각들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모습이 정말 끔찍하고 두려워서 다시 엎드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천장의 여러 개의 눈알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다시 눈을 떴다.


 지금 나는 꿈과 현실의 중간에 서 있는 듯했다.


 눈을 떴을 때 누군가 내 몸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두꺼운 내복에, 두꺼운 겨울 스웨터와 외투를 걸쳐 입고도 매일 새벽에 추위에 이를 달그락거리며 잠이 들어있었는데 오늘 새벽은 누군가 이불을 덮어준 탓에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불에는 흘러간 옛 시간의 냄새가 났었다.


 내 신경은 그 옛 시간의 냄새에 온 신경을 전부 쏟아붓고 있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옛 시간이 냄새. 맑고 차가운 겨울의 고드름이 널어놓은 겨울 이불의 끝에서 점점 녹아드는 냄새. 아버지의 등에서 나던 작업복의 기름 냄새 같은 것이었다.


 옛 시간의 냄새는 그동안 잘도 땅 밑에서 숨어 있다가 누군가 나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는 순간 땅 밑에서 올라와 버렸다.


 옛 시간의 냄새는 그동안 하나의 불빛을 향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있다가 센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줘 자신의 모습을 찾은 하쿠처럼 그렇게 비늘을 벗어내며 올라왔다.


 옛 시간의 냄새는 어설픈 호랑이가 그려진 담요와도 같았다. 처음 자전거를 타던 그 동네의 텅 빈 공터와도 흡사했으며, 여러 가지 주인공의 얼굴이 그려진 딱지와 마법 구슬들이 응축된 아련한 냄새도 지니고 있었다. 촌스럽고 단조로운 녹색의 페인트가 한가득 칠해진 철제 대문의 손잡이에 작고 귀여운 사마귀들이 한가득 붙어있었고, 그 모습이 낯설어서 짖어대는 우리 집 똥개의 모습도 보였다. 겨울이 끝나가는 봄날의 들녘에는 야릇한 아지랑이 냄새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한참을 앉아 있다가 퇴근하는 아빠를 마중하러 갔다.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는 내게 덮어준 이불에서 풍기는 엣 시간의 냄새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의 냄새를 잘 설명할 수 없다.


 주말이면 볕이 잘 들던 마당의 한 구석에 가지런히 놓인 투박하고 두꺼운 작업화에서 나는 질긴 가죽의 냄새 같기도 했다.


 나는 일어나야 했지만 이불에서 나는 옛 시간의 냄새에 그만 흠뻑 젖어버려서 눈을 떠 버리기가 싫었다.


 나는 두터운 외투를 입고 이불을 바짝 끌어당겨 코로 가져갔다.


 방 안에서 흘러 다니던 사람들의 숨 냄새가 이불에서 풍기는 옛 시간의 냄새에 묻혀 버렸다.


 누군가 이불을 덮고 있는 내 등을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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