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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27.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73

3장 당일


73.

 강변의 조깅코스는 유려하고 미려하게 보였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과 조경이 좋은 시설물이 들어섰다. 곳곳에 헬스클럽에서 할 수 있는 양질의 근력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운동할 수 있는 플레이스를 간격을 두고 만들었다. 대나무공원에는 너구리도 방사했다. 강줄기는 오랫동안 기름과 검은 하수구의 잔해물로 뒤덮여있었지만 시의 3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금은 낚시를 하는 인구가 늘어나서 낚시터를 지정하여 그곳에서는 마음껏 고기를 낚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궁극적으로 거대한 대도시에 인공자연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실체를 잃어버렸고 허울뿐인 자연을 그곳에 옮겨 놓은 꼴이었다. 부리수터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전부 먹을 수 없는 기형의 몸을 가진 물고기였고 대부분 외래 어종이었다. 토종 물고기는 이미 변이 한 괴상한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강에 외래어종을 살육하기 위해 뿌린 약품에 외래어종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남아있던 토종어종만 형태변이의 심각성을 보였다가 토종어종을 먹어치운 외래어종도 바이러스를 잔뜩 지닌 물고기들로 변이 하기 시작했다. 대나무 숲에 방사한 너구리는 일이 년 만에 전부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대나무처럼 사시사철 튼튼한 나무들마저 색이 바래져 죽어갔다. 심어놓은 꽃들은 구색 맞추기에 급급했고 봄에도 나비가 일지 않았다. 수순처럼 강변의 풀벌레가 자취를 감추었다.


 마동은 몇 년 동안 조깅을 하면서 풀벌레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봄이 와도 제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여름에 개구리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해 전 누군가 사무실에서 마동에게 요즘 여치나 귀뚜라미 소리 들어본 적 있어?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마 시답잖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 질문을 했다는 것은 기억이 났다. 기억이라는 것이 마동이 만들어낸 왜곡이 가득할지 몰랐지만 그 왜곡 속에 풀벌레들은 이미 부재적 존재였다. 누구도 풀벌레가 없다고 하여, 풀벌레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하여 슬퍼하거나 애달파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여자를 야외에서 끌어안고 있는 이 순간, 풀벌레 소리가 정오의 매미소리처럼 오케스트라를 이루었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1일째 저녁]

 해가 그 힘을 잃어가려고 서쪽의 산 너머에 걸려있지만 여름의 태양은 쉬이 그 강렬함이 꺼지지 않았다. 여름은 진정한 태양의 계절이다. 끝나지 않는 축구 경기가 없는 것처럼 어김없이 깊은 밤은 다가오고 태양은 하루를 달에게 반납하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축구경기가 계속 열리는 것처럼 미치도록 뜨거운 열기가 밤새 계속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낮 동안 태양의 열을 듬뿍 받은 대지는 식어들 줄 모르고 새벽까지 열기를 지닌 채 사람들을 대했다. 사우나에서 막 나왔을 때처럼 후텁지근한 기운을 여름이 끝나는 길목까지 대지는 뱉어냈다. 레인 시즌이 막을 내리면 몇 날 며칠은 뜨겁고 무더운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마동은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의 야간 조깅을 즐겼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조깅을 과감히 포기하고 따뜻한 국물이 있는 칼국수나 우동을 끓여서 칼스버그 한잔과 시원한 선풍기 바람 앞에서 회사에서 들고 온 리모델링 시추에이션 프로그램 작업을 도안하려고 했다. 가끔 먹는 우동의 맛은 언제나 마동을 위로해 주는 맛이었다. 하지만 마동은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먹을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입맛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무엇을 먹던지 사하라의 모래 알갱이를 씹는 맛이 날 게 뻔했다. 오늘 아침에 던킨도넛에서 먹은 머핀 반쪽과 커피 몇 모금, 그리고 점심시간에 우울한 만두가게에서 만두 몇 개를 집어 먹었을 뿐이었다.


 만두를 먹고 물과 함께 먹은 약을 삼키고 지금껏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가 집으로 온 것이다.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해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거의 먹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동은 의무적으로 무엇인가 입으로 넣어야 할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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