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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9. 2024

건물 속에서 10

소설



10.


그들은 나에게 한 곳을 가리켰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 나비가 있었다. 나비는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나비를 따라갔다. 나비는 중력을 무시한 날갯짓으로 하늘하늘 나의 걸음에 맞춰 주었다. 나비는 하나의 문 앞에 섰다. 나는 그 문을 열었다. 오, 맙소사. 그녀가 있었다. 그녀가 졸고 있었다. 뒷모습이지만 나는 그녀라는 걸 알았다. 내가 소망하는 대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편지를 쓰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왕왕 봤다. 이곳에서는 그녀를 괴롭히는 기침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동안 내내 잡고 싶었던 손이었다. 작고 보드라운 손. 그녀의 손을 잡자 나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분해가 되었다. 유리파편처럼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제발, 이곳에서 깨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저는 이제 이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자동차들과 무표정한 사람들과 늘 가는 곳만 가야 하는 그곳으로 가서 생명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봤다.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녀뿐이다. 나는 그녀를 흔들었다. 그녀가 으음 하더니 눈을 떴다. 눈을 떠서 보니 그가 와서 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런 데서 잠들어 있으면 어떡해요? 메시지도 안 받고]라며 약속한 그가 말했다. 나는 건물 1층의 로비에서 깜빡 잠들었다. 씨발, 욕이 나왔다. 물론 속으로만 뱉었다.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나의 소원은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순간 나도 모르게 ‘여긴 왜 왔습니까?’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심한 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정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이 세상은 나를 버렸다. 나도 버려지고 싶다. 도대체 왜 자꾸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오는지 신이 있다면 멱살을 잡고 물어보고 싶다. 씨발놈아 하고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금이 몇 시인가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시간을 알려 주었다. 약속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전부 꿈속의 일이었다. 나는 꿈을 실제처럼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더욱 나를 화가 나게 만들었다. [좀 더 일찍 오고 싶었지만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서 지금에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에게 자리를 옮기자고 했는데 나는 여기가 불편하지 않다면 여기에서 좀 더 앉아 있자고 했다. 그는 그러자고 했다.


[그 이야기, 그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칼럼으로 말고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 소설 형식으로 적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걸까 순간 생각했다. 그는 나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내가 지금까지 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말했다. 내가 나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나에게 그 이야기를 소설 형식의 활자로 남기자고 했다. 소설로 남긴다며 소설 속에서 그녀를 살릴 수 있다. 잠들어 있는 그녀를 깨우고 싶다. 어쩌면 신이 나에게 그러라고 나를 다시 이곳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주 얇고 작은 빛이지만 그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빛은 만질 수 없지만 제대로 본다면 신비로운 물질이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 천장에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나는 헛것이 보이고 있었다. 푸른빛을 띠는 나비는 언제 봐도 환상적이었다. 전기절약으로 아주 밝지 않지만 전등의 빛을 받아 나비의 날개는 반짝였다. 그 모습이 오소소 나에게 내려앉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지만 폭설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건물의 정문을 나오는데 그가 말했다. [이렇게 추운데도 나비가 있는 거 보면 요즘 세상은 참 이상하죠?]


그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나비를 보았다. 나비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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