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Feb 21. 2024

그녀의 도서관 1

단편소설


1.


이 도서관에 자주 오는 이유는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깊은 바닷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오직 바다의 이물감만 느껴지며 오로지 책에 깊게 빠져서 읽을 수 있다. 도서관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이 도서관이 그랬다. 늘 앉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으면 바다 깊은 곳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아주 깊은 바닷속에 있다고 느낄 때 주위를 둘러보면 앉아서 책을 보던 도서관 이용객들이 아무도 없어서 아주 고요했다.


소리는 어디에나 기생한다. 조용한 도서관에도 소리는 있다. 그러나 적요만 가득한 도서관은 이 도서관이 처음이었다. 밖의 소리도 들릴 법한데 그 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숨을 쉬면 숨을 내뱉는 숨소리만 들렸다. 도서관의 고요함은 조요함을 넘어 적막에 가까운 고요였다. 이 도서관이 말이다. 고요함과 조용함의 차이를 말로 하라고 하면 어김없이 제대로 빗나가지만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기분을 평소에는 느낄 수가 없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도 느낄 수 없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은 크고 넓고 새로운 건물인데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집 근처 도서관은 도서관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부대시설이 가득한 가운데 그저 책을 갖다 놓은 느낌이었다.


집 근처 도서관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없어서 시설을 축소했습니다]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시설을, 지원받아서 짓게 해주는 대신 도서관이라는 곳을 어쩔 수 없이 집어넣어야 하는 조약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50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 있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이 도서관은 도서관 같지 않다. 겉으로도 그렇다. 그저 일반적인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나는 창가에 앉는다. 창가에 앉는 이용객은 아무도 없다. 창가에 앉는다고 해서 밖의 뷰가 좋은 것은 아니다. 옆 건물의 벽이 보일 뿐이다.


벽.


벽은 마치 나에게 푸른 하늘이 보고 싶어? 하지만 볼 수 없어.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다. 아직 미미하지만 계절의 추위가 사람들의 옷깃에 매달려 실내로 딸려 왔다. 날이 추우면 도서관 안은 따뜻하다. 따뜻하면 잠이 온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어도 졸음은 쏟아진다. 졸음이 쏟아지는 그 순간이 마음에 든다. 선을 넘어가는 순간 천국의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하지만 악착같이 견디면 천국의 계단을 밟기 직전 그 아슬아슬한 반창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한 졸음에 이길 수 없다. 늘 졸음에 진다. 졸음이 아무리 쏟아져도 엎드려 잠들지 않는다. 닭처럼 꾸벅꾸벅 졸더라도 악착같이 견디고 견뎌, 졸음에 항복하더라도 책상에 엎드려서 잠들지 않는다. 고작 내가 이를 악 물고 할 수 있는 것이 책상에 엎드려 잠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고작 이런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그런 인간이다.


오늘도 어제 읽던 책을 읽고 있다. [벽 속의 또 다른 벽]이다. 벽을 깨고 싶어 하는 벽의 이야기다. 초현실이며, 극사실주의에다가 온통 은유로 가득한 책이다. 모더니즘을 깨는 이야기다. 해체에 가깝다.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렵다. 벽이라는 건 반드시 도서관 옆 건물의 벽만이 벽이 아니다. 인간도 단단한 벽을 두르고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벽이 더 완고해진다. 그러다 보면 도저히 깰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벽은 딱딱하다.

벽은 바깥의 단단한 벽을 깨기 위해 부드러운 베개를 안고 싶다.

아니야, 벽아, 너는 단단한, 더 단단하고 높은 벽을 쌓아야 해.


운이 좋으면 오후 5시에 옆 건물의 창문으로 그녀가 속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운이 좋다. 그녀는 늘 이 시간에 옷을 갈아입는다. 속옷을 입고 몇 분 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는 그 모습을 본다.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그녀는 몇 살 일까. 나이를 알 수 없다. 그녀의 얼굴은 시간으로 가려져 있다. 아마 일하러 가기 전에 옷을 갈아입는 것일 게다. 나는 그녀를 매일 오후 5시에 본다. 저녁에 하는 일이 뭘까. 직업여성일까. 그녀가 거울을 보고 입을 벌릴 때 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남자들의 성기를 잘 빨기 위해 이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매일 보고 반하고 말았다. 이가 없어서 나는 그녀에게 죽을 사주고 싶다.


[이제 마칠 시간입니다]

도서관 사서가 와서 그렇게 말했다.

[내일 또 오시죠]라고 사서가 또 말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매일 제일 늦게 나가는 사람이었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건물 속에서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