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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7. 2024

그녀의 도서관 7

단편소설


7.


사서는 흔쾌히 통이를 허락해 주었다. 심지어 내가 책을 읽을 동안 통이를 돌봐 주었다. 통이는 도서관에서 조용했다. 사서와 놀다가 지치면 옆 의자에 올라와서 잠을 자거나 옆 건물의 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 녀석도 벽 보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통이가 딱하게 보이는지 사서가 통이를 데리고 가서 놀아 주었다. 강아지 간식도 주었다.


[개를 좋아하거든요. 마지막으로 키운 게 얼마 전이라] 사서는 그렇게 말을 했다. 사서는 40대 여성이다. 사서 겸 관장이기도 했다. 시립도서관은 축소되고 축소되면서 예전부터 있던 사서에게 관장까지 임명했다. 관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평소에 잡일까지 늘 해오던 일을 하는 것뿐이다. 거기에 관장이라는 직함이 덧 입혀진 것이다. 사서는 마른 몸이 두각 되어 보이는 옷을 입었다. 늘 비슷한 스타일이다. 나 역시 늘 비슷한 옷을 입었다. 검은 옷이다. 검은 바지에 검은 티셔츠 위에 검은 패딩을 입었다. 오늘 그녀의 방이 내내 어두웠다. 그녀가 없는 것이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새도록 일을 한 다음 어딘가에서 남은 찌꺼기 밤을 보내고 그대로 출근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불순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없애려 노력을 한다. 하지만 불순물이 중앙에 들어가면 의외로 잘 섞이는 물질이 된다. 불순물이라고 해서 모두 불손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불손할지라도 순수하기 때문에 깨끗할지도 모른다.라는 나의 글을 사서가 유심히 봤다. 나는 공책을 덮었다. 사서는 열심히 해보는데 까지 해보라는 표정을 짓고 통이와 함께 사서의 자리로 갔다. 그렇게 통이는 도서관의 한 몸처럼 되었다.


[통이는 도서관에서 사는 게 낫겠습니다. 사서님이 데리고 키우세요]라고 나는 말했다. 통이도 그 편이 낫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요?] 사서는 기뻐했다. 나는 사서에게 500만 원을 건네주었다. [이 돈은 통이의 몫입니다. 통이 키우는데 쓰세요]라고 나는 말했다. 나는 사서가 외롭다는 걸 안다. 이혼하면서 아이들까지 남편에게 빼앗겼다는 것도 안다. 사서는 통이를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했다. 통이를 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때로 우리는 거짓말이 필요하다. 거짓말은 매우 불쾌할 수 있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1년 내내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그야말로 똥과 같다. 똥이란 세상 더럽고 악취나 풍기지만 거름으로 사용하면 된다.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




조의 아버지, 형건 할아범은 돈이 많은 부자였다. 형건 할아범의 할아버지가 대지주였고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재산이 좀 빠져나가긴 했어도 아들에게 대다수의 재산이 내려갔고 아들은 재산을 설탕사업으로 더욱 부풀렸다. 그러나 설탕파동으로 문제가 생기면서 갑부라는 타이틀이 사라졌다. 그래도 많은 돈이 상속되었을 텐데 형건 할아범은 돈이 많다는 걸 전혀 내보이지 않고 음식 장사나 하면서 지내고 있다. 정말 돈이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조는 학창 시절에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형건 할아범은 돈에 대해서 조에게 야박했다. 늘 일을 시키고 조에게 용돈을 넘치게 준 적도 없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무엇보다 나이가 너무 많았다. 형건 할아범은 재혼을 했고 조는 거기서 태어났다. 형건 할아범의 아내, 조의 어머니는 그 집의 대대로 내려오는 하인 집안의 여자였다. 조의 할아버지가 하인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설탕 파동으로 아내도 잃고 감옥에서 지는 형건 할아범의 아버지 대신 형건 할아범을 보살핀 사람이 조의 엄마였다. 그때 당시 조의 엄마는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고 형건 할아범은 20대였다. 조의 엄마 집안에서 형건 할아범을 먹여 살린 것이다. 조의 엄마와 형건 할아범은 소박하지만 행복했다. 형건 할아범에게 돈이 많은지 아니면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 검소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조의 엄마에게는 늘 아낌없이 돈을 사용했다. 하지만 조를 낳으면서 조의 어머니는 죽고 말았다. 궤양이 터진 것이다.




날이 흐리다는 건 특별한 날이라는 말이다. 하늘은 특별한 날에 흐리게 세상을 만든다. 나에게 있어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흐린 날은 특별하기도 하다. 특별하다고 해서 딱히 나에게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날이 흐르면 뭐든 냄새가 짙다. 그래서 날이 흐르면 냄새를 맡으러 다니기도 했다. 맑은 날에 비해서 냄새가 진하고 깊다. 학창 시절에는 조와 흐린 날에는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다. 조는 날 때부터 심장이 안 좋았다. 그것 때문에 입대를 하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잠을 자고 일어난 어떤 날 등에서 능소화가 피었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걸 알기에 삶은 농담이 된다고 카뮈가 그랬지] 조는 카뮈가 한 이 말을 왕왕했다. 걸어 다녔던 이유 역시 뛰어다니면 심장에 무리가 와서였다. 그렇다고 버스나 택시만 타고 다닐 수도 없었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적당히 걸어 다니는 게, 조에게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가 흐린 날 걷다가 도착한 곳은 포티나이너스였다. 조와 나는 포티나이너스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 속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재미있었다. [저기 봐, 사람들을 겉모습을 보고 알 수 없지. 그래서 삶은 농담 같은 거야. 무엇보다 아무도 믿으면 안 돼]라고 조는 말했다.


[누구도?]


[그래]


[너도?]


[아무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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