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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8. 2024

그녀의 도서관 8

단편소설


8.


며칠 째 그녀를 볼 수 없다. 날이 흐려 도서관의 짙은 냄새가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이 뱉어 내는 냄새에는 언어가 있었다. 날이 흐려 잿빛 가득한 세상이 되니 책들의 냄새가 말을 했다. 나는 그 언어를 차곡차곡 들었다. 책 속의 언어는 인간의 삶이다. 인간의 삶은 농담에 가깝다. 인간은 모두가 죽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단순한 문장을 쓰면 된다. 시 노트에 단순한 문장으로 채우자.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간단하지만 단순한 문장은 복잡한 기계 도식처럼 어렵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가장 가까이 꽂힌 책들은 무기에 관한 책들이다. 그 책들은 철분이 강한 쇠붙이 냄새를 뿜어내고 있다.

진하고 짙은,

인간은 쇠붙이를 들고 쇠붙이의 냄새를 맡으며 인간을 쏴 죽여 몸에서 터져 나오는 내장과 피의 냄새를 맡으며 지냈다. 한 번 그 냄새에 매료되면 무게도 엄청나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쇠붙이의 방아쇠를 당기기를 바란다. 방아쇠를 당겨 발포되는 총알이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의 몸에 구멍을 내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오직, 인간, 사람의 머리를 날리고 척추를 박살내고, 끈적끈적 내장기관이 배에서 쏟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는 광기가 붙는다. 인간이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데 필요한 것은 광기와 쇠붙이다. 그 짙은 냄새를 나는 맡고 있다. 쇠붙이를 손에 쥐면 나의 짓을 목격한 자는 전부 잔인하게 죽인다.


그 옆 책꽂이에 꽂힌 책에서는 피의 냄새가 났다. 짙었다. 피가 붉지 않고 검붉은 색의 피. 피 냄새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데 지금의 이 냄새는 정신이 맑아진다. 영혼까지 맑아진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흐린 날이 나흘 동안 이어지고 있다. 나흘 동안 나는 진한 냄새를 맡으며 보냈다. 진한 냄새는 거짓이 없다. 어떤 일이든 정확하게 이야기하려면 부정확한 모습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지만 냄새는 다르다. 특히 진한 냄새는 어두운 곳을 밝혀 준다. 움츠리고 있던 나의 작은 세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촉은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벽에서 꺼내줘야 한다. 설령 그녀가 원하지 않을지라도. 하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벽에 갇혀 피를 흘리고 있다. 역사적인 피를, 혁명의 피를.


그녀의 피 냄새는 짙고 진하다. 그 짙음이 내가 앉은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사서에게 문의를 했지만 사서 역시 옆 건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바로 옆의 건물이라도 그 안의 속사정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건물은 늘 거기에 서 있었지만 거기에 없었다. 그녀는 그 간극 사이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갇혀 피를 흘리고 있다. 이를 전부 뽑아내어서 그녀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단순한 문장이 이어지면 그건 하나의 온전한 단락이 된다. 그렇게 태제를 이루고 나면 그녀를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누구도 쓰지 않은 문장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문장, 누구도 쓰지 않았던, 심지어는 샐린저도 카프카도 쓰지 않았던 문장을 이어 붙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문장을 쓰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복잡하게 쓰는 건 오히려 간단하다. 인간의 삶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이 모여 인간의 복잡한 사이클을 만들어 냈다. 사이클은 점점 크고 넓어졌다. 처음 사이클을 만든 멤버들이 사라지는 동안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 사이클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에 비해 사람들의 삶은 단순했다.


농담처럼.


이제 복잡한 사이클을 만든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만 복잡한 사이클을 돌리고 있다. 그 속의 사람들은 단순하다. 단순하게 생활을 할 뿐이다. 단순하게 삶을 보내는 건 현실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문장을 나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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