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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1. 2024

그녀의 도서관 10

단편소설


10.


책을 펼쳤지만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창으로 보이는 옆 건물의 벽을 보고 있다. 도서관은 폐업의 수순을 밟고 있어서 그런지 이용객은 나 혼자 뿐이다. 옆 건물 한쪽에 있는 그녀의 방에서는 전혀 인기척이 없다. 그녀의 방 공기도 전부 녹슬어 있었다. 그에 비해 도서관은 더 짙어졌다. 밀도, 질량, 공기의 부피 같은 모든 것들이 짙어졌다. 도서관은 유기적으로 앉아 있는 나와 일정 부분 소통을 하려고 했다. 도서관은 나에게 전달할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걸 캐치해야 한다. 지금까지 늘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몸은 조금씩 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투명함이 짙어지다가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투명해질지도 모른다.


[그런 투명함은 불투명한 거야. 그렇게 투명해지다간 바람에 날아가서 영영 찾을 수 없을지 몰라]라고 언젠가 조가 말했다. 투명한 건 불영계곡의 계곡물 정도면 족하다고 했다.


이제 도서관이 사라지면 나는 선택이 하나밖에 없다. 조가 있는 그곳으로 그녀와 함께 가는 것이다. 분명 그 조용한 마을의 고요한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할 거야. 잘 알 수 없지만 사라지는 도서관과 보이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울고 싶을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더니 울고 싶지 않을 때 난데없이 눈물이 콸콸 흘렀다.



고개를 숙여 책을 봤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펼친 페이지를 읽는 것이다. 세상이 멸망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한다. 나는 내가 무슨 책을 들고 왔는지 몰랐는데 내가 들고 온 책은 에바 페론에 관한 책이었다. 그녀가 한 번은 에바 페론의 올림머리를 했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에바 페론은 진정한 아르헨티나 인들을 위한 위대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온 마음과 몸으로 벽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해 일을 했다. 병원을 짓고, 대학교를 지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반하게 된 사람이 체 게바라였다. 그는 에바 페론이 지은 대학교를 나왔고 그녀를 보며 혁명을 이루려고 했다. 남편 때문에 자궁 경부암이 걸려 죽음으로 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국민 앞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민 여러분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그녀는 33살이라는 어이없는 나이에 죽었다. 독재가 남편이 에바 페론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돈벌이를 했다. 세상에 신은 과연 있을까. [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거야.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지]라고 조가 그런 말을 했다.


에바 페론이 죽은 후의 글을 읽고 있는데 도서관이 또 숨결을 내뱉었다. 공기가 짙어졌다. 도서관은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도서관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은 자신만의 언어로 나에게 그녀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한다. 무엇일까.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알았다. 책을 덮으려고 하다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거기에는 좀 굵고 진한 활자로 [그녀는 당신 가까이에]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녀'가 에바 페론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문장이었다. 그녀는 나와 가까이 있다. 도서관이 책을 빌려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조금씩 확실해져 간다. 도서관은 온전한 유기체로서 나에게 그녀에 대해서 알리고 있었다. 도서관은 옆 건물의 그녀의 짙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 그녀에 대해서 나에게 알리고 있다. 도서관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건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도서관의 폐관도 그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라지면 도서관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도서관은 나에게 알리고 있다.


매일 도서관을 찾던 이용객들이 발길을 끊었다. 이제 도서관은 사서와 나밖에 없다. 도서관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싫은 것이다. 그녀도 사라지기 싫은 것이다.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완벽한 목적이 생기면 그 목적을 찾아서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녀의 행방을 찾자. 사서의 도움을 받아 옆 건물의 관리인을 만날 수 있었다. 2층의 저 호수에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저녁마다 나가는 것 같은데 혹시 아는 바가 없나? 관리인은 모른다고 했다. 시시티브이를 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사서는 관리인을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5만 원을 찔러 주었다. 관리인은 표정에 미묘한 변화를 보이더니 동물원의 개미핥기 같은 얼굴을 하고 시시티브이는 고장이 나서 녹화가 안 된 지 오래됐고 그녀는 여기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미노그바]라는 이름의 바에서 일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관리인은 자신도 그 바에 한 번 가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사서는 나를 보며 윙크를 날렸다. 통이에 대한 보답일까. 사서의 윙크가 낯설었다. 윙크가 읭크처럼 느껴졌다.


사서는 도서관으로 들어와서 일을 하기 전 말보로를 한 번에 한 갑 반을 피우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 뒤로 담배를 끊었다. 사서가 되면 좋아하는 담배를 끊기로 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도 이혼할 때 아이를 빼앗기는 이유가 되었다. 그때는 담배를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단 번에 끊게 되었다. 도서관 덕분이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만연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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