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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07. 2024

그녀의 도서관 16

단편소설


16.


사서와 통이, 나 그리고 도서관은 단단한 벽에 제대로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를 찾지 못해서 어떻게 해요?] 사서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처음 생각했다. 키키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도서관이 폐관하는 그날까지 그녀를 찾아다닐 것이다. 폐관하기 전 날, 도서관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는 책을 보지 말고 오직 키키를 위한 단순한 문장을 쓰기로 했다. 그날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병아리 감별사에 대해서 단순하게 적는 건 어렵지만 키키에 대해서 쓰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이제는 도서관이나 나에 대한 문장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문장을 만들자. 도서관에 대해서는 이미 단순한 문장을 완성했다. 도서관은 그것으로 족하다. 도서관이 폐관하는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폐관을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서관은 적어도 50년은 이 도시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저물어야 할 때를 도서관은 아는 것이다.


오후 5시에 나는 사서와 통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와서 키키를 찾아다녔다. 인간의 대단한 점은 도시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건물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고, 도로를 만들고, 건축물을 건설하고,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들이 그 도로 위를 다닌다.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대형마트를 지었다. 그 건물에 맞는 교통편을 짜 놓았다. 시청과 각 구의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는 지역에 속한 시민, 구민들을 관리를 한다.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도로 되어 있는 도시를 인간은 만들어 냈다. 타지방으로 여행을 가거나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도시를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 모두가 경치 좋은 곳을 원하지만 도시를 탐방하고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제일이다. 이렇게 복잡한 도시도 단순한 곳이 존재한다. 지하다. 반드시 하수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지하실, 지하주차장 등 모든 지하를 말한다.



조는 가끔 거짓말에 가까운, 믿을 수 없는 말을 하곤 했다. 편지에는 좋아하는 수녀와 데이트를 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마치 소설처럼 적었다. 진짜 소설일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한 부분에서 이야기가 끊어졌다. [수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야. 수녀와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는 건 더 어렵지. 수녀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에서 멀어져 있다고] 조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끝냈다. 조와 수녀의 사랑에는 능소화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세계는 진화를 한다. 조 역시 진화를 하고 있다. 모든 것들은 그에 맞게 진화를 하고 있다.


조와 수녀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달려오다 보니 그림 속 배경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키키가 걸어 놓은 능소화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그림 속 배경은 어쩌면 다른 도시일지도 모르고, 다른 나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그림 속 배경은 이곳과 비슷했다. 뒤로는 아파트 단지가 있고 그 앞에서 팔월이 되면 능소화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림을 보고 그렇게 추측을 한 것뿐이다. 추측은 늘 위험하다. 특히 나의 추측은. 달려와서 그런지 날이 시린데도 불구하고 땀이 났다. 바람이 불어 땀에 닿았다. 금방 식을 것 같은데 땀은 차가운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온도 차이가 나는 곳으로 가자. 세상은 정직하지 못하 지면 밑의 세계는 지상보다 훨씬 정직하다. 굳건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언제나 진실을 원하기 때문에 온도가 낮은 지하에는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아파트 단지는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엄청났다. 여러 건설회사가 마치 겨루기라도 하는 듯 아파트를 세워 놨다. 지방뉴스에서 건설사들이 앞 다투어 도시계획 하에 집중적으로 덤벼 든다는 기사를 예전에 본 것 같았다. 그때 자연주의자들이 이곳에 있던 냇가와 숲이 사라진다고 시위를 했었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는 지상 주차장이 없다. 모든 아파트의 주차장이 지하에 있었다.


단순하게 문장을 완성하고 나면 그건 그것대로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확실히 키키는 존재한다.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키키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키키를 표현해야 한다. 단순하고 정확하게.


[키. 키. 는. 존. 재. 한. 다]


여러 수식어를 달 필요 없이 키키는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거면 됐다. 키키가 존재하기 때문에 찾기만 하면 된다. 키키는 내가 찾아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하 주차장은 고작 지상에서 몇 미터 밑으로 내려갔을 뿐인데 고요했다. 그 세계만의 짙은 냄새가 있었다. 적막하고 적요했다. 도서관과 비슷했다. 어쩌다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을 다니면 그 소리는 고요를 전부 깨트렸다. 비록 다시 집중해야 하지만 짙음이 존재했다. 키키는 존재한다. 온도의 차이를 느껴라. 거기에 집중해라. 나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온도의 짙은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했다. 아파트 단지의 지하 주차장이 지하 4층까지 대부분 있었다.


나는 밑으로 내려갔다. 지하는 어두운 세계다. 인간은 어둠에게 삼켜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다. 어둠이란 인간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불 같은 관념이다. 눈을 감으면 어두워진다지만 실은 눈을 감는다고 해도 완전한 어둠이 아니다. 눈을 감는 순간 빛과 빛의 소자들이 보일 뿐이다. 진정한 어둠은 완전히 죽음이 왔을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 번 밖에 죽지 못하기 때문에 죽음 그 이후의 어둠은 그저 추측을 할 뿐이다. 나의 추측은 위험하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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