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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6. 2024

잠을 먹는 여자 1

단편 소설


1.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의 일이다. 사회적으로나 날씨 적으로도 지금보다 고요하고 깨끗했다. 요즘은 비가 오면 삼사 일씩 폭우가 쏟아지고, 여름에는 36도를 웃돌았다. 사회적으로 불황의 늪은 이어져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불면에 시달렸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나 역시 삼사일정도 잘 못 자면 하루 정도 제대로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십 년 전에는 누워서 잠이 들면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잠들었다. 지금 경제는 점점 어려워져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소상공인 자영업은 자영업대로 힘들어서 편히 잠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내가 쓰는 소설은 하락세를 보여 인기가 없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 당시에도 소설을 적고 있었다. 항상 아내보다 먼저 잠이 들고 아내보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의 이야기다. 잠이 들면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나는데 어쩐지 개운하지 않은 남자는 언젠가부터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내에게서 이상한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꺼끌꺼끌해서 보니 머리카락이 목 안에 한 가닥이 걸려 있었다. 욕실에서 입을 벌려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죽 당겨 보니 40센티미터에 달하는 검은 머리카락이었다. 주인공은 그 머리카락이 아내의 머리카락이란 걸 알았다. 주인공은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잠이 들고 아내가 밤에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쓰다 보면 샛길로 빠지기 마련이었다. 나의 문제는 너무 많은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상상이 과하면 상상하지 않는 것보다 못했다. 여기까지는 잘 썼는데 여기부터 자꾸 다른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고지가 보이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할 수 없이 일상에서 벗어나 며칠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나의 시정을 출판사에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은 것들을 기록해서 소설이 끝나면 특별 판으로 에세이로 내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으나 여행경비와 함께 사진기자 겸 운전사를 붙여준다는 말에 허락하고 말았다. 차가 없는 나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려고 했으니 운전사가 딸린 사진기자가 있다면 멍하게 창밖만 볼 수 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진기자는 나보다 두세 살 적은 남성이었는데 질문도 많고, 노래도 많이 부르는 산만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작가님이라는 호칭 대신, 형, 동생 하기로 했다. 동생은 지방 전문대 사진학과를 나와서 웨딩 업체를 거쳐, 광고회사를 지나 지금의 출판사에서 계간으로 나오는 잡지에 여러 사진을 담당하고 있었다.


동생의 이름은 준민이다. 준민이는 여자 친구가 있고 베이커리에서 파티시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준민이는 여자친구가 베이커리에서 일을 관둘 때 둘이서 작은 빵집을 하면서 자신은 빵 사진을 촬영해서 여러 소셜 미디어와 블로그로 홍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사진으로 꽤 인정을 받으니까 잘 될 거라고 나는 말했다.


준민이는 자신은 호러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재미있는 호러 소설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국판 호러 소설을 몇 권 읽지 못했다. 준민이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래에 들어 집집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 원래 집에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면 이가 빼지는데 그 이를 집 마당에 심었다. 그러면 그 이빨을 먹고 그 집을 지켜주던 요괴가 점점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게 되면서 이빨도 묻지 않았고, 아이의 이빨 하나에 몇십 년을 배부르게 땅밑에서 지내면서 집을 돌봐주는데, 배가 고픈 요괴들이 화가 나서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여 버린다는 내용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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