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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7. 2024

잠을 먹는 여자 2

단편 소설


2.


준민이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그 흥미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재미있는 요소를 잘 살리지 못한다. 요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했다. 내가 쓰는 소설은 정적이고 고요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작은 파문이 소설에 나타나는데 그 파문이 던지는 힘이 커지는, 그런 느낌의 소설을 적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져서 출판사에서 청탁을 받고 아내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목 안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준민이와 나는 사진과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대체로 통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루하지도 않고 너무 떠들썩하지도 않게 여행을 했다. 우리는 메타세쿼이아로 유명한 담양으로 갔다. 메타세쿼이아가 펼쳐진 도로에서 준민이는 셔터를 눌렀다. 3월의 오후 햇살이 밝고 바삭거렸다. 숨을 쉬면 아름다운 민트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눈으로 이 풍경을 주워 담고 머리로는 소설의 뒷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메타세쿼이아 도로에서 벗어나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대나무 숲을 걷는 기분은 좋았다. 준민이는 여기저기 사진으로 대나무의 곧은 모습을 담았다. 대나무 숲은 굉장했다. 오후 4시가 되니 땅으로 떨어지는 빛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나무가 휘어 공간이 빈 곳으로 빛이 떨어지는데 마치 영혼들이 오소소 내려와서 작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황홀한 풍경에 한참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준민이가 사진을 촬영하다가 뒤늦게 나를 따라와서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뷰를 대고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점심도 굶고 이렇게 돌아다녔다는 걸,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차를 몰아 아주 한적한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모텔에 숙소를 잡아다. 방금까지 괜찮았는데 방에 짐을 풀고 나니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들었다.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고 싶었지만 밥도 먹어야 하고 샤워도 해야 했다. 우리는 카운터에 앉아 있는 주인에게 근처에 음식점 같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차를 몰고 5분 정도 가면 문을 연 가든이 있는 곳을 주인장은 알려 주었다. 인적이 드물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주인이 전화를 해 놓을 테니까 서둘러라고 했다. 주인은 우리에게 닭백숙을 주문할 건데 어떠냐고 물었다. 준민이와 나는 좋다고 했다.


형님, 이거 마치 호러 물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가든이라, 닭백숙을 먹고 나면 우리는 정신을 잃어버리는 거 아닙니까?


준민이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이 아무것도 없는 호숫가에서 일사천리로 척척 진행되는 것이 이상할 만큼 찜찜했다.


형님, 만약에 우리가 가든에 도착했을 때 주인장의 모습이 호러 같으면 우리 그대로 나오는 거 어때요?


호러 같은 거?


예, 막 호러스럽게 생긴 할머니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외진 곳이라 그런지 해가 떨어지니 깜깜했다. 준민이는 주인이 가르쳐준 대로 차를 몰았다. 아직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구석구석까지는 알려주지 못했다. 내비게이션 속 차는 그저 허공에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차를 몰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 분 정도 가니 가든이 보였다. 다행이었다. 들어가니 주인장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준민이와 나는 서로를 보며 안도하는 눈빛을 마주쳤다. 닭백숙은 시간이 좀 걸린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작은 방으로 벌써 상 위에 여러 반찬이 깔렸다. 냄새가 좋았다.


준민이는 맥주도 주문했다. 운전은? 준민이는 이런 경험이 많은지 주인장에게 술 때문에 그런데 차를 여기에 좀 주차하고 내일 찾으러 오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준민이는 차로 오 분 정도니까 걸어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맥주를 한 잔 마시니까 몸이 확 풀어지는 게 뜨거운 물에 데쳐진 시금치가 될 것만 같았다. 반찬들도 꽤나 정성이 들어가서 맛있었다. 물론 허기진 우리의 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갈하고 아주 맛있었다. 이곳의 특색이 잘 나타났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반찬들이었다. 작은 방의 문이 열리고 주인장은 우리에게 닭백숙이 오기 전까지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한 접시 가득 빙어튀김을 주었다. 이런 횡제가. 빙어 튀김은 바싹하니 간장에 찍어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양이 많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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