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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는 하늘의 저편에서 자줏빛 연기를 뿜어내는 빌딩이 보였다. 빌딩은 최고층인 43층에서 그 밑으로 30층까지 무너져 내렸다. 인슈타워의 상층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근처 건물의 사람들도 대피를 했다. 소방대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각 구에 배치되어 있던 소방서에서 대원들이 대부분 출동을 했다. 밤인데도 인슈타워 주위에는 마치 숱이 많은 인도여자의 머리카락 같은 인파가 우글거리며 구경을 했고 그들 대부분은 코를 막고 있었다. 누린내는 건물을 부식시키며 풍기는 냄새와 결합하여 더욱 고약하고 소름 끼치는 악취로 사람들의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인슈타워가 무너지면서 만들어내는 연기는 확실히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빌딩바닥의 잔해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찢겨나간 큰 괄태충의 몸통 부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빌딩바닥의 깨끗한 환석과 대리석은 괄태충의 점액질과 조각난 몸통으로 기이한 무늬를 만들었고 소방대원들은 누린내 때문에 작업이 더뎠다.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빌딩 안에 가족을 두고 땅을 치며 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경비는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심정지가 왔고 괄태충의 점막에 에워 쌓인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퉁퉁 부은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그 모습은 바다에 떠서 익어버린 채 죽은 50대 남자의 시신과 비슷한 형태였다.
의문스러운 점은 무너진 빌딩의 잔해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긴 남자 3명의 시체도 발견되었다. 인슈타워 상층부의 철골구조물이 전부 부식이 되어 녹아내렸다. 부식된 부위는 자줏빛을 띠는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인슈타워는 30층 밑으로는 빌딩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인슈타워의 위풍당당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층부는 엘리베이터가 추락하여 파손된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했고 30층 밑으로 야간근무를 하던 사람들은 피해가 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골을 파내는 듯한 지독환 누린내의 영향으로 심각한 두통을 호소했고 지속적으로 구토를 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누린내로 인해서 빌딩진입이 어려웠다. 누린내의 악취는 방호복을 뚫고 마스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괄태충의 흩어진 몸뚱이를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괄태충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어딘가로 빠져나가 버렸는지 수백, 수천 마리의 괄태충이 지나간 자리가 부식된 모습만 경찰과 소방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경찰에게 보험회사 사고조사팀의 한 사람이 휴게실에서 본 괄태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경찰은 믿으려 들지 않았고 종말론 자들은 해변의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사건 이후에 바빠지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다는 묵묵하게 그 자리를 늘 지켰다. 변한 것이라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이었다. 흐름 속에 휘말리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 흐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두워진 바다는 깊이를 숨긴 채 고요했으며 너울거리는 표면이 미약하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해무 때문에 바다의 모습은 더욱 혼돈스러웠고 신비하게 보였다. 달이 떠 있었다면 달빛을 반사시켜 자아내던 달무리의 잔인한 리리시즘도 녹아 있을 법한 밤바다였다. 고요한 밤바다는 오후부터 시작된 비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바다를 제외한 모든 것이 비에 젖어가는 세상에 되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제외하고.
장군이의 눈꺼풀로도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눈을 깜빡이지는 않았다.
-해무가 계속되고 이다-
“그렇습니다. 바다 근처에 살고 있지만 여러 날 이렇게 집요하리만큼 짙은 해무가 계속되는 나날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둡지만 자세히 보는 것이 좋다 해무가 자줏빛을 띠고 이다 암흑의 우울함이다 이런 해무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좋은 예감은 아니다 저곳을 통해 무엇인가 무서운 무엇인가가 이리로 오다 아주 끔찍한 무엇인가가 말이다-
마동은 장군이의 시선과 함께 바다의 표면으로 시선을 응시했다.
바다와 하늘은 무엇을 불러내려고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충돌을 야기하는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나도 알 수 업다 다만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건 말해줄 수 이다-
장군이는 반듯한 이마로 맞은 비를 땅 밑으로 흘려보내고 있었고 눈은 깜빡이지 않았다. 마동은 옆에서 우산을 펴 들고 서 있었다. 등대 저 밑의 해변은 아직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고 여전히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까지 바리케이드 앞에까지 몰려들어 있었다. 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었다. 해무저편 먼 곳, 바다표면의 너울거림만 느껴졌다. 포세이돈이 제우스의 번개를 잠재우느라 실랑이를 한고 고된 몸을 바다에 뉘인 채 모든 바다생물에게 지금 나는 잠을 자야 하니 나를 깨우지 말라, 하며 잠이 들어버리고 이내 바다는 숨죽여 고요함에 젖어들어 버렸다. 마동은 잠을 자고 있는 포세이돈을 떠올리고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실체가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삶에 무서운 순간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 피해 가거나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줏빛 해무가 몰고 오는 무서움이란 어떤 형태의 무서움일까. 그 무서움이라는 것은 꿈을 꾸면 언뜻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 세계가 암흑이 되는 모습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해무는 고요한 바다 위의 작은 부표처럼 밤하늘의 공기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고 자줏빛을 띠는 해무가 마동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해무 역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마법의 성 문지기처럼 입을 한일자로 다물었다. 해무는 배부른 흑동고래처럼 서서히 움직일 뿐 알아볼 수도,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소설 속의 연무처럼 신비로운 해무는 바다 위에서 지상으로 옮겨가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은 해무를 보면서, 뱃고동소리를 들어가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애절한 관계도 만들었다. 그런 해무가 어두운 자줏빛을 뛴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해무였다. 바다에서만 존재하는 해무 그 자체로 마동의 눈에 비쳐야 하는 해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속에는 사람들에게 결락과 혼란을 야기하는 어둠의 우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