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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2

330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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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어떻게 해야 무서운 그것을 멈출 수 있습니까?”


-나도 알 수가 업다 그것은 오고 있고 아주 무섭다는 것 밖에는 나도 알 수가 업다-


“그것이 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는 꽤 기억력이 좋지 안다 말해주었다 나는 생각하다 정부와 그들의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혼란이 야기될 거라고 말이다 다가오는 것은 우리 같은 형성변이자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우월한 공포스러운 존재들이다 정부도 그들이 타협을 하지 않아서 꽤 혼란스럽다 이 사실을 지난번에 너에게 말해주다 정부 쪽에서 너에게 쏟던 감시를 풀었다 정부 쪽 사람들은 네가 다가오는 저들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다 다만 네가 어느 쪽 편에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정부는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래서 정부 쪽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다-


정부 쪽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감시를 풀라는 명령을 윗선에서 전달받았다고 했다. 마동은 전화통화로 스미스요원에서 그렇게 전혀 들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혼란이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마동의 말에 장군이는 바다에 시선을 두고 침묵을 지켰다. 침묵은 언제나 그렇듯 무겁고 묵직했다. 억지로 들어 옮기려 해도 그 무게가 상당해서 어른 몇 명으로 어림도 없는 무게였다. 비는 떨어져서 반듯한 장군이의 이마를 타고 흘렀다.


-나는 인간들을 좋아하다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타인을 무시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그 쌓아 올린 것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굉장히 비참해하며 한껏 나약해지다 나약함이라는 자아에서 벗어나면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하기 일쑤가 되다 마지막에는 공격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인간을 나는 좋아하다 그런 인간이 지극이 인간적이다-


장군이는 또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이번 침묵은 처음의 침묵보다 길지 않았다. 마동은 그 침묵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왼손으로 우산을 옮겼다.


-개에 대한 형성변이는 매사에 게을러지게 마련이지만 선택이 좋다 나는 이제 다른 동물로 변이 하는 방법을 잊어버려다 무능해진 거다 이쪽 분야에서는 무척 실력이 하락하고 말았다 이 생활이 편안하니까 말이다 인간들은 개를 좋아하는 종족이다 적당히 짖어주고 꼬리를 흔들어주면 인간들은 자신의 개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무서운 건 말이다 저곳을 통해서 그 두려운 것이 이곳에 도달하고 나면 그러한 인간들이 혼란을 겪게 되다 말 그대로 혼. 란.이다 서로에게 감정 없이 칼을 겨누게 될지도 모른다 중간단계가 없어져버리다 슬퍼하거나 나약해하는 순간이 사라져 버린다 바로 환란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개 따위를 좋아하지 않고 인간들은 상대방에게 날을 휘두르게 되다 집에서 길러지던 개들은 무참히 도륙당하거나 쫓겨나서 개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그 상대방이라는 것은 어제까지 서로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부부이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사랑을 속삭였던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갑자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인간들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알던 사람은 더 이상 업다 인간이 없어진다는 건 나 역시 힘이 든다는 말이다-


이곳을 덮치려는 것은 어떤 존재이기에, 내 속에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마동은 자신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깊은 곳으로 떨어지며 봤던 고통에 찬 얼굴들이 떠올랐다. 작은 얼굴들이었지만 얼굴이 없었다.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거대한 통증의 고통이 여미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고통이 가득한 얼굴들이 너구리의 몸뚱이에 붙어있었다. 얼굴들이 어디선가 본 얼굴들이었다. 죽어가던 마동의 아버지의 얼굴이었고 기찻길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군대에서 자살 한 전우의 얼굴이었고 아기를 유산한 연상의 동거녀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일그러져 있었다.


여러 개의 혼란스러움이 혼재해 있었고 얼굴들은 울부짖었다. 우는 소리가 마동의 고막을 찢어내고 가슴을 할퀴었다. 그 얼굴들의 코에서 꿈틀거리는 괄태충이 기어 나왔다. 그들은 괄태충을 떼어내고 싶었지만 손이 없었다.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마동을 찾았다. 그 울음소리는 소리라는 균형에서 벗어나서 불규칙적이었고 자각적이었다. 무구한 여러 개의 소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마동의 고막을 세차게 건드렸다. 미세하게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고통에 찬 얼굴들의 울부짖음은 더욱 커져갔다. 너구리의 눈은 여전히 냉소를 가득 담고 불사의 몸으로 긴 시간을 마동을 따라다녔다. 고통에 찬 얼굴을 괄태충 수십 마리가 덮어버리고 얼굴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얼굴은 고통을 호소하다 사라졌다. 그 얼굴이 사라지고 연기가 남은 곳에 또 다른 얼굴들이 탄생했다.


너구리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고 등에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달려있었고 소피의 얼굴이 달려있었다. 옆에는 분홍간호사의 얼굴이 보이고 마지막으로 밑에는 는개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붙어있었다. 마동은 너구리에게 달려가서 그 얼굴들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마동의 다리는 여전히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봤지만 너구리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고 너구리는 뒤를 돌아보며 등에 달린 그녀들의 얼굴을 손으로 떼어 내 씹어 먹었다. 마동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느새 마동의 얼굴은 비를 많이 맞고 있었다.


-너에게 말해다 무서운 것은 인간들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는 뇌수독룡이다 나도 어떤 식으로 정부가 그들을 지하세계에만 가둬놓고 살아가게 하는지 알지 못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부도 참 대단하다 그 무서운 존재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장군이는 말을 잠시 끊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의 세계는 태초에 지구가 생성을 시작하려는 것처럼 검은 물결이 넘실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존재가 지금 자줏빛의 해무를 통해 마른번개와 함께 이쪽 세계로 다가오려 하다 다가오는 존재는 뇌수독룡을 불러 낼 것이다 지상으로 말이다 그들(뇌수독룡)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 나도 모르다 아마 정부 쪽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그들은 끈적끈적하고 질척한 곳에서 냄새나는 액을 뿜어내면서 역병처럼 살고이다 괄태충을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어떤 형상인지는 알려진 바가 업다 그들이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뻔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들을 공황상태로 몰고 가다 뇌수독룡이라는 존재는 바늘처럼 뾰족한 촉수에 위험하고 기분 나쁜 액을 담아서 다니며 인간의 뇌를 빨아먹을 거다 인간의 뇌 속에 가득 들어있는 물컹하고 달짝지근한 뇌하수체의 맛을 그들은 알고이다 인간의 뇌를 빠라(빨아) 먹으면 뇌 속에 스며들어 있던 개개인의 의식까지 뇌수독룡이 흡수해 버리다 괄태충의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무척 징그럽고 공포스러운 모습이다 그들은 고독하고 지하의 독한 악취를 품고이다 그런 존재를 불러내려고 하다 지금 다가오는 무서운 것이 말이다-


“그것들을 봤습니다. 바로 오늘, 집에 들어왔었습니다.”


마동은 누린내를 떠 올렸고 욕실에서 자신의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기분 나쁜 그것들을 봤다. 사념 속에서 끔찍하게 나온 자줏빛의 먼지덩어리들을 떠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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