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뜨겁게 먹으면 더 좋은 음식이 있다. 방울토마토가 그런데 또 하나 있는 그것이 바로 ‘무’다. 무우라고 하고 싶지만 그냥 ‘무’라고 표기를 해야 한다. 그게 이치에 맞는 표기법이다. 나는 좀 못된 구석이 있어서 이치에 벗어나는 표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신는 스레빠를 절대 슬리퍼라 쓰지 않는다. 아예 안 쓰면 안 썼지, 슬리퍼는 거실에서 신는 우아한 그것의 느낌이 강하다. 발가락이 튀어나올 것 같은 여름의 청소년 같은 그것은 스레빠 내지는 스렙빠라고 표기하고 싶다. 잘못된 표기라고 우겨봐야 소용없다.
그런 것들이 몇 있다. 닭도리탕이 먹고 싶을 땐 닭도리탕을 해 먹는다. 상상만으로도 닭도리탕은 그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닭도리탕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닭도 맛있고 그 속의 감자도 맛있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양념에 밥을 슥슥 비벼 먹는 맛 또한 말해 무엇하리.
그런데 어느 날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이런 지랄 옆차기 같은 소리가 있나. 닭볶음이면 볶음이고 탕이면 탕이지, 볶음탕은 무슨 말이란 말인가. 게다가 닭볶음탕은 닭도리탕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의 상상에 1도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고추냉이보다 와사비라고 쓴다. 이러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 있다. 마돈나를 마다나로 표기하면 큰일 난다. 남자에게 큐티라고 표기하면 큰일 난다. 오픈을 오프튼이라고 표기하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 있다. 고작 고추냉이를 와사비로 표기했다고 일단 똥부터 싸질러 놓고 보는 인간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싸질러 놓고 수습 못하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것처럼 무도 무우라고 말하고 싶은데 무는 나 자신과 타협을 해서 무라고 표기를 한다. 여기는 지방이니까 ‘무시’라고도 부른다. 무시 다리, 무시 있나,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냥 무라고 표기한다. 고집스러운 내가 양보한 무는 뜨겁게 익혀 먹으면 아주 맛있다.
간혹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밥을 볶아 먹는다. 그때 깍두기를 썰어서 같이 볶으면, 정말 다른 건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다. 연기가 엑토플라즘처럼 피어오를 때 계란 하나를 탁 깨트려서 비비면 한 끼로는 손색이 없다.
무생채를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컵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컵라면에 무생채를 잔뜩 넣고(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뜨거운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2, 3분 정도 돌리면 무생채에 라면 국물이 배어 들어서 아주 굿이다.
사진은 삼계탕이다. 삼계탕은 칼로리와 열량이 높은 음식이다. 그래서 자주 먹다 보면 살이 찔 수 있지만 삼계탕은 참 맛있다. 무라카미 류의 삼계탕 찬양 글을 보라, 삼계탕이 얼마나 멋진 요리인지. 삼계탕의 장점이라면 삼계탕이 먹고플 때 아무 삼계탕집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삼계탕집의 맛은 평준화되어서 이 집이나 그 집이나 저 집이나 비슷하다. 짜장면은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돼지국밥도 돼지머리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 뼈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 살코기를 삶아서 국물을 내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삼계탕은 특별히 다르게 맛이 나지 않는다. 고민 없이 삼계탕이 먹고 싶을 땐 아무 삼계탕 집에 문을 스륵 열고 들어가면 된다.
삼계탕은 집에서 해 먹기도 간단하지만, 사진의 삼계탕은 편의점 삼계탕이다. 만원 정도 하는데 역시 삼계탕 전문점의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기하다. 편의점에서 먹는 다면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봉지를 잡고 군대에서 봉지라면을 먹듯 먹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삼계탕을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니. 편의점에 앉아 땀을 흘려가며 삼계탕을 먹으며 폰으로 티브이를 볼 수 있다니. 또 신기하다.
하지만 편의점 삼계탕을 더 맛있게 먹으려면 집에서 냄비에 넣어서 끓일 때 깍두기를 잔뜩 넣으면 더 맛있다. 무가 삼계탕의 국물을 빨아들여서 씹을 때 뜨거운 무의 맛이 훨씬 좋다.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면 깍두기를 나오자마자 국밥에 왕창 넣어서 먹는데 무는 뜨거우면 맛있다.
일본에 가면 오뎅 파는 곳에도 무가 있다. 한국에도 어묵 파는 곳에 무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무를 팔지 않는다. 만약 단골 분식집이나 어묵집에서 무를 먹어보라. 국물을 빨아들여서 엄청 맛있다. 그래서 일본의 오뎅 파는 곳에서는 무가 제일 비싼 축에 속할 것이다. 아마 몇 천 원 한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뜨거운 무를 맛있게 먹어 왔다. 고등어조림이나 갈치조림에는 바닥에 무가 반드시 깔린다. 그리고 양념을 잔뜩 머금은 무를 먹어왔다. 나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러 가면 고등어는 뒷전이고 무를 먼저 먹는다. 그게 제일 맛있다. 무는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맛으로 웃음을 준다.
무김치가 삭으면 그냥 먹기 힘들어 한 번 씻어서 마치 통통한 새끼돼지 같은 무를 어머니들은 찌개에 넣었다. 그러면 국물 맛이 좋은 것으로 기억되곤 한다. 팔팔 끓이면 온 집에 찌개 냄새가 퍼진다. 아버지는 일 마치고 들어오면 그 냄새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빨리 씻고 오세요, 소리가 퍼진다. 그런 내면의 추억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에 먹던 맛을 찾게 한다. 박찬일 요리사의 책에서처럼 추억의 절반은 맛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