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쓰레기를 버리고 운동 준비하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자 같이 탄 사람이 말을 건다. Warst du im fitnessstudio?
이 말을 듣고 웃었다. 왜 그렇게 물어보냐니 운동하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그런다. 내가 독일에 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주소지 등록을 하러 갔을 때도, 코로나가 터져 마스크를 받으러 갔을 때도 스위스로 떠나는 새벽 전철에서 술 취한 흑인 아재한테도 독일에 무슨 운동하러 왔냐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나는 몸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그렇게 말을 건네는 건 내 겉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물론 몸 좋은 것은 기본적이어야 하지만, 건강하고 강한 몸이 우선이다.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는 목표이지만, 매일 같이 하다 보면 적어도 시작과는 조금이나마 달라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실 이런 말들은 어딜 가도 듣는 말이지만, 이곳에 와서 더 많이 듣는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몸은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
이렇게까지 폐관 수련에 집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기록하고 무너지지 않는 토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기나 공부, 자기 계발 등 무슨 일이든 손 뻗어서 닿는다면 다 이루고 싶은 욕심이 나는 크다. 그렇게 난사람과 된 사람 둘 다 갖춘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내 지금의 모습을 보니 둘 다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특히 된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인성에 문제 있는 것 같다.
휴가 내내 사람 관계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니 결국에는 내 정신적인 문제로 남아졌다. 지금까지 이런 수많은 고민들의 결과가 항상 지금과 같았다. 이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듯하다. 사람과 친해지며 유대감을 쌓고 싶지만, 친해지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자기 암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가진 가치관이 극도로 센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라서 인지, 이제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마음도 진심인지 모르겠다. 이번 튀르키예나 스위스 여행에서도 만난 사람들도 그와 같았다.
어떠한 경우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롯이 공적인 관계로만 남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도 연락 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알려주고. 그런데 이런 모습은 몇몇 이들에게는 참 차가워 보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서글서글하니 다가오는 사람들이 된 사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인연들은 단지 내가 독일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같았다. 내가 독일에 있지 않는다면 나를 찾았을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한 번이라도 선을 넘어버리면 바로 손절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보니, 참 사람들 난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러지 못한 모습에 여행 내내 웃는 얼굴로 속 마음은 화가 나 타들어갔었다.
남들 다 아는 뻔한 사실들을 지금까지 몰랐던 나는 뭐 하고 살았나 싶었다. 이래서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능력으로는 난사람 부류에도 못 끼는 게 현실이다. 학습하고 경험한다고 해서 내 재능을 끌어올리기에는 아예 적성에 맞지도 않은 분야도 있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동료에게 자신이 생각한 그 동료 모습에 대해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위로가 되면서도 내가 계속해서 사람 관계를 무 자르듯 잘라버린다면 저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나를 위해 말해주는 친구가 내 인생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 쉽지 않다. 15년간 생각해 왔던 결론이 결국 도돌이표로 남는데,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그런 친구가 굳이 필요한가라는 말이 함께 돌고 있다. 내가 항상 말해주는 입장이어서 듣는 입장은 익숙지 않다.
아마 저 드라마의 두 사람처럼, 나는 된 혹은 난사람이 평생 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제삼자의 입에서 내가 둘 중 하나의 유형이란 말을 듣는다면 그때는 나는 아니라고 확실히 바로잡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