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추락하는 50대 만년 부장 이야기
드디어 주말이다. 이렇게 주말을 고대한 적이 있었던가. 그저 쉬고 싶었다. 아내는 벌써 눈치를 챈 듯하다. 임원 인사 발표 전에 넌지시 내가 될 수도 있다고 괜히 떠들었나 보다. 이번 주에 온통 우거지 얼굴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 눈치채고도 남는다. 아내는 주말에 맛있는 것 해 놓을 테니 잘 다녀오라고 했다. 이례적이다. 아마 신혼 때나 듣고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대사다.
웬일로 주말에 애들도 나가지 않고 집에 있다. 왁자지껄 주방에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뭔가 음식을 준비하는 듯하다. 생일이나 큰 일 때나 보는 풍경이다. 주말이면 더 늘어지는 아내는 늘 어디라도 가자고 하고, 애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보통이다.
나가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몇 개 올라왔다. 잡채, 호박전, 묵, 불고기 등등. 빨간 소주도 보였다. 요즘 소주는 싱거워서 맛이 없다는 말을 기억한 모양이다.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어쩐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취준생 딸이 말을 걸어온다. 매일 힘든 표정에 어깨가 축 처져있는데 오늘은 다르다. 어쩌면 나보다도 몇 배 힘든 나날일 거다. 그것에 비하면 나는 배부른 소리다.
역시 술이 한잔 들어가야 힘이 난다. 빈속에 마시는 술은 식도를 따라 내려갈 때 한껏 고조된다. 나는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농담도 하고 실없는 소리도 했다. 아이들이 말을 받아주니 기분이 올라온다. 애들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기분이 좋으니 모든 게 다 맛있고 소화도 잘 됐다. 취준생 딸에게 진심으로 용돈을 주었다. 딸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위로차 용돈을 준 적은 있어도, 내 기분이 좋아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준 것은 오랜만인 것 같다. 주간에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가족은 힘들어도 내가 일을 하는 보람이다. 가족이 있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