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추락하는 50대 만년 부장 이야기
사건 발생 후 이틀이 지났다. 어제보다 잠을 잘 잤다. 피곤은 고민도 잠시 물리쳐주나 보다.
오늘 할 일을 보니 점심 약속이 없었다. 직원들은 하나 둘 점심을 갔다. 다른 때 같으면 누구라도 불러 같이 갈 텐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마음까지 쪼그라들었구나. 회사를 나와 무조건 걸었다. 삼십 분쯤 걷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 혼밥을 할 생각이었다.
마침 순댓국집이 보였다. 테이블이 몇 개 없었다. 따뜻한 순댓국이 들어가니 마음이 밝아지는 듯했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회사 직원이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으응~ 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바람을 맞았네. 여긴 어쩐 일이야?”
“맛집이잖아요. 택시 타고 왔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직원 점심값까지 계산하고 나왔다. 식은땀이 식는지 등 뒤가 서늘했다. 이제 사내에 소문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혼밥 부장.
사무실에 들어오니 김상무는 실무자를 데리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건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일부러 나를 배제하려는 것 아니면 내가 불편해서다. 아마 전자에 해당될 듯하다.
한참 지난 후 부서 직원이 나왔다. 나는 가지런히 준비한 결재판을 집어 들었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결재판을 펼쳐 내밀었다. 김상무는 앉으라는 소리도 없이 시시콜콜 물었다. 어색하게 존대를 하며 대답을 했다. 평소 같으면 대충 보고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꼼꼼하게 공부를 하고 들어가 다행히 대답은 잘했다. 그러나 하나는 결재를 하지 않고 딴지를 걸었다. 별 것도 아닌 거라 반박을 하려다 이내 수긍하고 나왔다. 벌써 기선재압에 들어갔구나. 결재도 많은데 매일 할 생각을 하니 기운이 쭉 빠졌다.
나는 있어도 없는 거구나.
부서장 발령까지 며칠 남지 않았지만 그동안 어떻게 보낼지 망막하다. 더군다나 내일은 김상무 승진 축하연 있는 날이다. 내 어색함에 극치가 나오든지 아니면 승복하는 자세를 보이든지 결판이 날 듯하다. 마음은 축하자리에 핑계라도 대고 빠지고 싶지만 그것은 심약한 내가 더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스스로 복잡한 감정이 분출되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수 있다. 내가 늘 승복하고 나를 합리화 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역겨운 타협을 빙자한 양보의 상황. 언제나 내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