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추락하는 50대 만년 부장 이야기
충격적인 통보를 받은 지 하룻밤이 지났다. 태양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전히 떠올랐다.
어제는 통보를 받고 그 길로 퇴근을 하였다. 너무 일찍 들어가기가 어색하여 한참을 걷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 되었다. 그 사이 메시지 한통만이 왔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부서 부하직원인데 술 한잔 하려느냐는 문자였다. 나는 오늘은 그냥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잘 건네지 않고 지내는 사이였다.
밤새 잠이 안 왔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겨우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회사에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가끔 숨이 멎은 듯 가슴이 답답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누워 있어서 현기증이 났다. 냉장고 문을 열고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물이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 웃옷에 떨어졌다. 자주 음식이나 물이 흘러내린다. 박상무의 얼굴이 어른거려 정신이 더욱 또렸해졌다.
남아있으려니 비위도 약한 내가 견딜까 싶었다. 김상무는 냉혈 인간이다. 선배라고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아마 더 구석으로 몰지도 모른다. 이미 판단이 끝난 게임에 연연해하지 않을 것이다. 떠나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무런 계획도 없다. 며칠 전에 친한 친구가 상사가 된 후배가 더러워서 몇 개월 버티다 퇴사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뭘 그까짓것을 갖고 그러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괜히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새벽에 잠이 들어서인지 평소보다 약간 늦었다.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출근을 했다. 겨우 시간을 맞췄다. 늦고 싶지 않았다. 자리로 가며 김상무의 책상 쪽을 힐끗 보았다. 아침부터 김상무는 이대리를 앞에 불러놓고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어제보다 더 당당한 모습이다. 사무실은 너무도 조용했다.
일단 말투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다. 나한테 어제까지 형님이라고 하던 후배에게 이제는 존댓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반은 존대를 하고 반은 얼버무리는 식으로 해야 할지. 한숨을 돌리고 기회를 봐서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건네야 된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 순간에도 이런 야비한 생존본능이 작동한다는게 우수웠다. 하루가 더디게 갔다. 직원을 부르는 일도 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결국 김상무와 대면하는 것은 하지 못했다. 내일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