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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21. 2017

2017년 해외영화 Best 10

 작년만큼이나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었고, 그만큼 많은 영화가 쏟아졌다. 독립영화계에서 나온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영화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한국영화와는 다르게, 해외에서는 독립영화부터 블록버스터까지 영화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좋은 영화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국내 개봉 기준으로) 아카데미 시즌을 장식한 베리 젠킨스의 <문라이트>와 <재키> 등의 영화, 전주국제영화제/서울국제여성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등을 돌아다니면서 관람한 <골든 엑시트>, <스푸어>, <배드 블랙>, <희망의 건너편> 등의 영화, 넷플릭스 등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VOD로 개봉한 <치욕의 대지>, <은판 위의 여인> 등의 영화들이 쏟아졌다. 물론 계속해서 이어지는 스크린 독과점과 작은 영화들의 교차상영 등 때문에 놓친 영화들도 많다. <배드 지니어스>, <조용한 열정>, <랜드 오브 마인>, <세일즈맨>, <레이디 맥베스> 등의 영화는 아쉽게도 극장 관람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보고 싶어요' 리스트의 추가하고 언젠가 볼 기회를 만들어봐야 겠다. VOD를 통해 공개된 데이빗 린치의 <트윈픽스: 더 리턴>을 아직 관람하지 못 한 것도 아쉽다. 그런 와중에도 <내 사랑>, <아메리칸 허니> 등의 영화들은 극장 상영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올해 정식 개봉작과 영화제, 시네마테크와 넷플릭스까지 많은 곳에서 관람한 여러 편의 영화 중 10편을 꼽아 보았다. <토니 에드만>과 <퍼스널 쇼퍼>처럼 작년에 미리 접한 2017년 개봉작은 제외했다.

Best. 10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2016)

감독: 빌 모리슨

출연: 빌 모리슨(내레이션)


 올해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관람한 작품이다. 아쉽게도 극장상영은 놓쳤지만, 영화제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D-Box 덕분에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는 캐나다 황금광 시대의 주무대였던 도슨 시티에서 공사 중 동토층에 40년 가까이 묻혀있던 흑백 무성영화/기록영화/뉴스릴/사진 등의 필름이 발견되며 시작한다. 북미 영화배급라인 끝자락에 위치한 도슨 시티에 새 영화가 도착하기 까지는 개봉 이후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영화사들은 필름을 회수하길 귀찮아 했고, 도슨 시티의 극장 DAAA는 마을의 전통적인 방법대로 필름통을 유빙이 흐르는 하천에 던져 하류로 흘러가게 냅두거나 매장했다. 그렇게 쌓인 필름은 영구동토층 속에서 보관되었다가 발견되었다. 빌 모리슨은 그 필름에 담긴 영화와 사진 자료를 취합해 도슨 시티를 비롯한 북미의 역사를 정리한다. 도슨 시티의 발전모습, 채플린의 영화 <황금광 시대>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 야구경기의 모습을 담은 뉴스릴, 1910년대~30년대 사이에 제작된 온갖 무성영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기록영화...... 물에 불어 변질된 부분만이 그 필름들이 땅 속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시공을 초월해 현재의 관객에게 도착한 필름이라는 타임캡슐이자 현실을 복제하여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시네마의 본질을 담아낸다. 같은 영화제에서 만난 <부르카 복서>(2016), <나의 시, 나의 도시>(2017) 등의 영화도 좋았지만,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처럼 마법처럼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Best. 9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2017)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데이지 리들리, 아담 드라이버, 존 보예가, 오스카 아이작, 마크 해밀, 캐리 피셔, 로라 던, 켈리 마리 트란


 연말에 찾아온 선물 같은 작품이다.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를 통해 멋지게 복귀한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깨어난 포스>가 스타워즈의 첫 영화 <새로운 희망>(1977)을 사실상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면, <라스트 제다이>는 40년간 이어오던 스타워즈 신화를 정면으로 박살내면서 세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펼쳐낼 수 있는 장을 열어 젖힌 작품이다. <라스트 제다이>를 연출한 라이언 존슨은 <루퍼>(2012) 등의 저예산 SF를 연출하며 실력을 입증해왔다. 그는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스타워즈의 신화를 박살냄과 동시에 구세대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헌사를 보내며 아름다운 퇴장을 선사한다. 그가 구세대에게 보내는 헌사는 갑작스러웠던 <깨어난 포스> 속 한 솔로의 죽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의 마지막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우며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2016)를 통해 예견되었던 시리즈의 방향성은 레이, 카일로 렌, 핀, 로즈, 포 다메론 등이 이끌어 갈 미래를 밝게 비춘다. 행성에, 디스트로이어에, 광산에 나 있는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처럼, <라스트 제다이>는 시리즈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빛으로 이를 채우려는 작품이다. 스타워즈 역사상 가장 놀랍고 멋지며 충격적인 장면(홀도 제독의 그 장면)을 선사함과 동시에 포스의 영으로 등장하는 요다(무려 오리지널 트릴로지 당시의 인형 모습으로 등장한다)의 모습처럼 팬서비스 마저 잊지 않는,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블록버스터이다.

Best. 8 <혹성탈출: 종의 전쟁> (2017)

감독: 맷 리브스

출연: 앤디 서키스, 우디 해럴슨


 <혹성탈출> 프리퀄 트릴로지는 마치 세 편의 영화가 하나의 긴 서사영화처럼 느껴진다. 시저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장대한 서사극을 만들어내는 각본과 연출의 치밀함, 활극에서 시작해 전쟁과 성경적인 마무리까지 담아내는 거대한 이야기는 <혹성탈출> 프리퀄 트릴로지가 <반지의 제왕>(2001~2003) 등 21세기 최고의 트릴로지와 어께를 나란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특히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발전하는 퍼포먼스 캡쳐 기술은 이제 스튜디오를 벗어나 야외에서의 촬영마저 가능하게 되었다. <종의 전쟁>은 이러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을 시저의 여정에 동참시킨다. 골룸부터 킹콩, <스타워즈>의 스노크까지 다양한 CG 캐릭터들을 연기해온 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영화의 새로운 깊이를 선사한다. 가히 디지털 시네마 시대이기에 가능한 CG 서사영화라고 이 영화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설원에서 수용소, 성경의 가나안처럼 느껴지는 약속의 땅까지 향하는 시저의 여정은 <벤허>(1962) 같은 영화의 그것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Best 7. <로우> (2016)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

출연: 가랑스 마릴리에, 엘라 룸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관람한 줄리아 뒤쿠르노의 <로우>는 가히 올해의 데뷔작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물론 영화는 2016년 칸 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되긴 했다) 이번이 첫 장편 연출작인 줄리아 뒤쿠르노와 첫 연기작인 가랑스 마릴리에, 두 사람이 만들어낸 끔찍하고 충격적이며 과감한 성장영화인 <로우>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온갖 종류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남성중심적 위계질서 하에서 여성과 성소수자가 다뤄지는 모습, 동물들을 살리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수의대학에서 행하지는 동물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행위들, 이러한 폭력의 연쇄작용 속에서 식인으로 발현되는 그 마지막까지, <로우>가 담아내는 풍광은 제목 그대로 날 것의 세상이다. 

Best. 6 <잃어버린 도시 Z> (2016)

감독: 제임스 그레이

출연: 찰리 허냄, 로버트 패틴슨, 톰 홀랜드, 시에나 밀러


 제임스 그레이는 집요하게 20세기를 그려낸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의 이야기(<이민자>(2013)), 디스코의 시대였던 80년대 뉴욕의 밤(<위 오운 더 나잇>) 등에 이어 미지 속으로 자신의 몸을 투척하는 어느 탐험가의 이야기에 다다른다. 그는 <잃어버린 도시 Z>를 통해 자신이 절대로 직접 다다를 수 없는 20세기 초라는 미지를 탐구함과 동시에 어느 인간의 삶이라는 미지, 영화라는 미지의 영역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산만하게 스크린의 양옆과 앞뒤를 오가며 쌓아오던 영화의 운동과 서사는 후반부의 하강운동을 통해 무너져내리고, 아마존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몸을 내던지는 퍼시 포셋처럼 감독 역시 영화라는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환영 속으로 카메라와 함께 들어간다.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Z에 대한 퍼시 포셋의 집착은, 초당 24프레임씩 스크린 위에서 흘러가는 영화라는 환영을 기어이 확신하고 마는, 단지 스크린 위에서 스쳐지나갈 미지의 장소와 사람들을 긍정하겠다는 제임스 그레이의 선언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Best 5. <엘르> (2016)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우>가 올해의 데뷔작이었다면 <엘르>는 올해의 컴백작이 아닐까? (물론 <엘르> 역시 작년 칸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로보캅>(1987),  <토탈리콜>(1990), <원초적 본능>(1992) 등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머니메이커로 자리잡은 폴 버호벤이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작품이다. 마치 유럽 시절의, 초창기의 폴 버호벤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컴백임과 동시에 <엘르>는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자벨 위페르가 아니었다면 성립할 수 없었던 영화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성폭행을 당한 뒤 덤덤히 방을 청소하고, 아들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스시를 주문하며, 성병 검사를 위해 병원을 예약하고 거품목욕을 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모습은 압도적인 미스터리함으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가 연기하는 미셸의 과거가 등장하고, 성폭행범과의 관계 사이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며 자신의 사도 마조히즘적인 욕구를 채우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고 압도적이다. 여성, 딸, 어머니, 친구, 애인, 전 부인, 불륜상대, 이웃, 동료, CEO, 상사 등 한 가지의 상태로 정의 될 수 없는 그녀(elle)의 복합적인 모습이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 속에 꾹꾹 눌러담겨 있다.

Best 4. <패터슨> (2016)

감독: 짐 자무쉬

출연: 아담 드라이버, 골시프테 파라하니, 나가세 마사토시


 <패터슨>을 보기 위해 꼬박 1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후 국내 어느 곳에서도 상영되지 않은 (상영을 기대했던 안다미로의 짐 자무쉬 특별전에서는 상영되지 않았고, 블라인드 시사회가 한 차례 있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패터슨>을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를 통해 드디어 관람하게 되었다. 뉴저지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은 이 영화는 버스 드라이버이자 시인인 패터슨의 정체성을 따라 시처럼 진행된다. 알람 없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 하고, 버스를 운전하고, 승객들의 이야기와 눈 앞의 풍경에서 영감을 찾고, 폭포 앞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기울어진 우체통을 바로 세우고, 아내 로라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반려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주말을 제외하면 놀랍도록 변함 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이 영화는 하루하루를 시의 연처럼 담아낸다. 패터슨이 일상에서 보고 들은 존재들은 하나의 디졸브로 뒤섞여 패터슨이 써내려가는 한 편의 시로 완성된다. 주말의 사건 이후 일요일에 어느 일본의 시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패터슨은 능숙하게 놓았던 펜을 다시 꺼내고, 시인이 준 백지노트에 시를 써내려 간다. 영화 밖의 매체를 영화로 끌어오고, 기어이 영화로 만들어내는 짐 자무쉬의 <패터슨>은 그의 걸작 중 하나로 남지 않을까 싶다.

Best 3. <산책하는 침략자> (2017)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마츠다 류헤이, 나가사와 마사미, 하세가와 히로키


 <산책하는 침략자>는 노골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2005)을 연상시킨다. 외계인의 침략, 외계인의 갑작스러운 퇴각, 사랑이라는 테마 등등의 요소는 영화 속에서 스필버그의 광팬임을 공공연히 밝혀온 구로사와 기요시가 <우주전쟁>에서 따왔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난다. 타인의 개념을 수집한다는 독특한 설정의 이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가 그간 만들어온 영화들의 호러적인 특성과 사회생활 및 인간관계 속 삭제되어가는 여러 속성들에 대한 성찰을 동시에 담아낸다. 영화의 프리퀄 격인 6부작 드라마 <예조: 산책하는 침략자>는 이를 조금 더 긴밀하게 드러내며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우주전쟁>과 <신체 강탈자의 침입>(1956) 등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외계인의 침략이라는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무엇보다 인간에게 깊숙히 접근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Best 2. <어떤 여자들> (2016)

감독: 켈리 레이차트

출연: 로라 던, 미셸 윌리암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릴리 글래드스톤


 켈리 레이차트의 <어떤 여자들>은 놀라운 작품이다.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일상적인 순간들을 나열하는 이 영화는 아주 느슨한 교차점만을 지닌 네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고객을 상대하느라 고생중인 변호사인 로라,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하지만 가족과 마찰을 빚고 있는 지나, 어느 외딴 마을에 야간학교 강사로 오게 된 베스와 그 지역 농장에 살고 있는 젊은 목공. 도시가 아닌 한적한 몬타나 주의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느슨하게 연결되는 네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느슨한 연대 혹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표방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어떤 여자들>이라는 영화는 그들을 한 번도 만나게 하지 않고서도 그들을 연결시킨다. 쓸쓸해 보이는 몬타나 주의 차가운 길은 그들 사이를 잇는 길이다. 목수 역으로 출연한 릴리 글래드스톤은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Best 1. <로건> (2017)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휴 잭맨, 다프네 킨, 패트릭 스튜어트, 로이드 홀브록


 개인적으로 <로건>을 길고 긴 슈퍼히어로 장르 역사상 처음으로 있는 완벽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MCU의 영화도, DCEU의 영화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도 <로건>과 같은 최후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로건>은 17년간 9편의 엑스맨 영화에서 활약해온 휴 잭맨과 울버린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로라로 대표되는 다음 세대에게 성공적으로 프랜차이즈를 넘기는 자리였으며, 서부극에서 시작된 슈퍼히어로 장르의 역사를 한 차례 결산하는 놀라운 작품이다. 듀나의 말처럼 "유행을 정면으로 역행하지만 그것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작품"이 바로 <로건>이다. <로건>은 슈퍼히어로 과포화 시대가 만들어낸 R등급 히어로 영화의 가장 뛰어난 성취이자 당분간은 그 어떤 히어로/블록버스터 영화도 넘볼 수 없는 걸작이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와 함께 올해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아니 21세기 최고의 블록버스터이자 슈퍼히어로 장르의 올타임 베스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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