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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숨 Nov 01. 2024

은인 1

너와 함께 성장하는 나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행복할 때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책과 함께하는 내 아이.

그래서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5살 때부터 하루에 책을 30~40권 쌓아놓고 보던 아이(물론 그림이 많은 책이었지만..)

봤던 책을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래도 재밌다며 책 속에 파묻혀 있는 네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 내 뱃속에서 이런 아이가 나왔다니.. ’     


수빈이가 7살 즈음

동네 엄마들과의 모임 중에 역시나 수빈이의 책사랑이 화제가 되었다.


 “ 저번에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아이들이랑 잘 놀다가 수빈이만 없어졌길래 찾아봤더니

   글쎄 혼자 책장 앞에 앉아서 책을 읽더라. 그래서 우리 애가 삐졌었다니까?”

 “ 어쩜 수빈이는 책을 저렇게 좋아해요?”

 “ 우리랑 키자*아로 놀러 갔을 때도 체험 대기 할 때 다른 아이들은 간식 먹고

    재잘거리기 바빴는데 수빈이는 혼자 조용히 책만 보더라고.. 깜짝 놀랐잖아”

 “ 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 비결까지는 아니고.. 그냥 시선 가는 곳마다 책을 두었어요. (웃음)

  방, 거실, 부엌, 등등 아이가 생활하는 곳에는 조금씩 책을 나눠 놔둬서 그러가...? (호호호)”


“ 유치원 공개수업 때 보니까 수빈이 발표도 잘하고 글도 잘 읽던데 한글은 언제 뗐어요?”

“ 5살 때 혼자 책 보다가 뗐어요 난 뭐 해준 것도 없는데.. 혼자 하더라고요..”

“ 정말 좋으시겠어요..”   


딸아이 또래 엄마들은 누구나

딸의 책사랑을 부러워했고 그런 딸이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덕분에 난 어깨뽕이 차오르는 경험을 했다.




초등 1학년에 입학하고 한 달 즈음 흘렀을까..?

초등학교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전화에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수빈이 담임이에요. 잠깐 통화 가능 하실까요? ”

“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 어머니..........  지금 수연이는 이대로라면 학교생활이 불가능합니다.!”

“ 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학교생활이 불가능하다니... 그것도 입학 한 달 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청천벽력 같은 이 한 마디에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떨리는 손에 휴대폰이 떨어질까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 수빈이에게 무슨 일 있나요?”

“ 수빈이가 남색 모자 달린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등교하잖아요”

“ 네. 제가 추울까 봐 일부러 그 점퍼를 입혀서 보냈어요...”

“ 음.. 앞으로 그 잠바는 입히지 말아 주세요.  

  수빈이는 학교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그 잠바에 달린 모자를 쓰고 책만 보고 있어요.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모자를 쓴 채로 책만 봅니다.

  아이들과 소통하지 않고, 제 이야기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세상에서 나오질 않아요”

“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 갑자기? 도대체? 왜??'

가만히 아이의 행동을 되새겨 보았다.

     

“ 책을 보는 건 너무나 좋은 습관이에요.. 하지만 상호작용이 안되고 책만 보는 건 문제가 있어요.

집에 무슨 일이 있나요?  제가 알던 수빈이가 아니라서요.. "

" 아니요.. 특별히 집에서 달라진 건 없는데요..... "


'  설마........ '


순간 집에서 책만 보고 있던 수빈이를 칭찬하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입학 후 책 보기에 더 열중하던 아이를 아무 생각 없이 칭찬만 했다.

아이의 얼굴표정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 제 전화에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제가 돌려서 말씀드리기보단 사실대로 말씀드려야 빠르게 대처할 수 있고

 아이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직접적으로 말씀드려요.”

“ 네... 저도 직설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게 좋아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병설유치원에서 수빈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오며 가며 볼 때는 참 밝고 쾌활한 아이였는데..

   지금은 너무 어둡고 책에만 의지하는 거 같아요”

" 제가... 수빈이 동생들 돌보느라 너무 무관심했었나 봐요....

 ( 수빈이 8살, 마루 5살, 다복이 3살이었다 )     

수빈이가 아이들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 네! 하루종일 책의 세상에서 나오질 않아요  "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아니라고 책을 보는 건 맞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는 몇 마디라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분명 아이는 내게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어린 동생에게 신경 쓰느라 '너는 이제 컸으니까' 라며

아이가 내게 힘들다고 한 말들을 무심코 흘렸나 보다.

동생 2명이 생기면서 아이는 상처를 받았으리라..


어떤 책에서 읽었었나..

라디오 사연에서 들었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동생이 생겼다는 건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당당히 애인을 집에 데려 오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했다.


" 여보, 난 오늘부터 이렇게 어리고 예쁜 새로운 애인이 생겼어. 그러니까 그동안 당신이 아끼던 옷, 신발, 액세서리 등 모든 물건을 나누어 쓰고,  나의 옆자리는 이제부터 어리고 예쁜 애인 거야. "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동생들을 누구보다 예뻐했던 아이였기에

아이가 힘들어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건 당연하니까'라며 아이의 심적 충격을 헤아리지 못했다.


고작 8살이 된 아이에게 ' 넌 이제 컸으니....' 라며 무심코 던진 말들로

아이는 외롭다 힘들다 보낸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 엄마에게 지쳐 언젠가부터 신호를 보내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오롯이 자기 이야기와 감정을 받아주는 책의 세상에 갇혀 버렸나 보다.

그랬나 보다.


"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을 못 보게 해야 할까요?”

" 아니요. 책은 수빈이에게 의미가 큽니다. 그리고 책을 보는 것 자체는 너무 좋은 습관이에요"

" 그러면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일단 수빈이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다고 했지요?"

" 네 "

" 수빈이 방이 있나요?

" 아니요. 동생들과 같이 생활해요"

" 어머니! 분가를 생각해 보세요. 수빈이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 네.... 상의해 볼게요 "

"  그리고 책을 못 읽게 하기보단 아이의 생활환경을 정리해 주시고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자연스럽게 책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불라불라불라.......”     




수빈이는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총 12 학급인 소규모 학교 병설유치원에 2년을 나닌 후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가 작다 보니 재잘재잘 거리며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지금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눈여겨보았었는데 누구보다 밝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너무 다른 모습이라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저 잘한다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놀러 갈 때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이.

친구들 집에 놀러 가서도 책장 앞에 앉아 책을 읽던 아이.

친구들과 체험활동 하는 곳에서 놀다가도 어느새 책을 읽던 아이였다.     

그런 모습이 별스러웠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별스러움에 난 심취해 있었다.

아이가 왜 그렇게 책만 보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책은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에 빠져서 현실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선생님 이야기에

내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었다.        


“ 수빈아!.. 음... 수빈이가 책을 엄청 사랑하잖아?”

“ 응! 난 세상에서 책이 제일 좋아”

“ 이제 우리 초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책 말고 다른 것들도 해볼까?”

“ 왜??”

“ 음... 우리 수빈이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 아니야, 책 읽으면 다 경험할 수 있어”

“ 그렇지.. 그런데 책을 통한 경험 말고.. 수빈이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거야”

“ 음........ 엄마는 내가 그랬으면 좋겠어???”

“ 응! 우리 수빈이가 책 읽는 것도 너무 좋은데.. 몸으로 직접 느끼고 부딪히는 것도 했으면 좋겠어”

“ 음.... 알았어”

“ 정말!!!????  고마워!!!! 고마워!!!”     


아이를 연신 끌어안으며 책 속의 세상에서 사람들 세상으로 아이를 꺼내리라 다짐했다.




에게 이란

자신의 마음을 마음껏 보여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힘들 땐 도피처로,  응원받고 싶을 땐 지지자로,

슬플 땐 슬픔의 무게를 반으로 나눠주는 공감자

행복할 때는 기쁨을 만끽해 주는 친구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학교와 가정을 연계하여 수빈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수빈이의 생활 규칙 』

하나, 시간을 정해놓고 책 읽기

, 아이들과 바깥 놀이 할 때는 놀이에만 집중하기

, 수빈이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어 동생들로부터 수빈이 공간을 침범받지 않도록 하기.

, 모자 달린 잠바는 입지 않기  

다섯, 하루 30분 엄마와 단둘이 함께 시간 보내기   


역시나 첫 번째 두 번째 규칙을 힘들어했다.

첫 술에 배부르랴...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중간에 울기도 하고 아이들과 놀이할 때 잘 섞이지 못해서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 번째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만큼은 동생들이 누나에게 가지 않도록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수 있도록

자신의 노력이 완성품으로 열매를 맺을수 있도록 했다.

     

동생들로 인해 한 번도 집에서 만들기 그리기 등을 완성해 본 적이 없는 아이.

그래서 또래 아이들보다 자존감이 낮았고, 시간 내에 완성하는 걸 힘들어 하던 아이.


무던한 노력 끝에 정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시간 안에 많은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시간 안에 하는 걸 어려워한다.

'동생들이 어려서 그런 거야' 라며 딸의 작품이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심했던 시간들...

그때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미안함의 파도가 되어 내게 밀려온다.

     

노력의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학교에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저귀를 뗀 이후로 단 한 번도 대소변 실수를 하지 않던 아이가 이런 변화들을 겪으며

대소변 실수를 할 만큼 아이는 힘들어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과의 관계를 왜 그리도 힘들어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과 노력들로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흘러갔다.     


물론 잘 적응하는 듯하다가도

힘든 상황이 생기면 여전히 책 속으로 꽁꽁 숨어버렸다.


하지만 책 속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배웠기에  

세상에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며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성장하였다.          


1학년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선생님의 전화를 거부했거나 아이의 상황을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수빈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선생님께서 아이의 변화를 그냥 지나쳐 나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내 아이가 세상과 단절되어 벽을 쌓고 있다고 알려 주신 선생님.

자신의 아이처럼 안타까워하시고 실질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시던 선생님.

혹시나 상처받지 않을까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던 선생님.

수빈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년이 바뀌고 나서도 세심하게 살펴주셨다.


그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수빈이로 자랄 수 있었다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데 아이의 변화를 소홀히 넘기지 않아 주셔서 그 힘듦을 이겨 낼 수 있었다.     


교권이 바닥을 치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인권이 무시되는 현 사회현상이 참 안타깝다.


내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고

내 자식이 소중하면 다른 자식도 소중한 것이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요즘..

참 씁쓸하다.    

 

당신의 자녀처럼 여기셨기에 아이의 변화를 안타까워하셨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기에 아이의 마음에 어둠이 걷히고 세상의 빛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번째 은인은

우리 아이가 밝게 자랄 수 있는 밑거름과 따뜻한 햇살을 선물해 주셨다.


*** 박 OO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어느 학교에 계신 지 모르지만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수빈이가, 우리 가족이 힘든 산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훌쩍 커버린 아이와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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