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TV도 뉴스도 보지 않고 지내는지라 세상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명의 친구들로부터 '덕규야 가족들은 괜찮아?'라고 연락이 왔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터키에서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며, 뉴스를 보다 너의 가족들이 생각나 연락한 것이라 했다.
황급히 TV를 틀었더니 뉴스에서 터키와 시리아 인접 지역에서 7.8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했다. 화면 속의 건물들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고 지층들이 종잇장처럼 찢어져 있었다. 놀란 마음에 터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을 돌렸다. 다행히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들, 이곳저곳에 사는 친구들 모두 무사했지만, 몇몇은 지진이 일어난 지역에 사는 그들의 친척들과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해당 지역을 취재한 기사와 뉴스들을 찾아보았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5만 명, 붕괴된 건물만 20만 채였다. 터키의 문화 특성상 대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살고 있어서 붕괴된 건물 1채에 몇 명이 함께 있었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로 인해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거나, 일부 생존자가 온 가족을 잃게 되는 끔찍한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아직 구조가 이뤄지지 못한 곳이 많아 사망자가 20만 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피해 지역들을 통틀어 집계된 이재민의 수는 1400만 명. 한국으로 치면 소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국민에 1/4이 재난에 빠진 상황과도 같았다.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살아남은 이들과 슬픔에 잠겨있을 터키 국민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았았다.
그곳에서는 당장 이재민들이 지낼 곳과 먹을 것은 물론, 생존자에 대한 구조 요청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지원들조차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살려달라 외쳐도 오지 않는 구조대와 아무런 대책 없는 국가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나' 답답한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재난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이후 대처는 인간의 몫이건만. 그 몫을 해야 할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 나와 '이 정도 재난을 대비하는 건 불가하다'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원래 가진 것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 졸음과 배변까지. 인간의 기본욕구는 커녕 안전과 생존을 위한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언제 다시 지진이 덮칠지 모르는 위험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이들은, 6000번 넘는 여진과 수시로 추가붕괴가 발생하는 그곳에서 살아있는 지옥 내지 지구의 종말을 경험하고 있었다.
문득 6년 전 경주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지진이 생각났다. 그 당시 발생한 지진으로 야자 도중 급히 학생들을 대피시켰고, 수능 전 날 일어난 2차 지진으로 시험이 일주일 미뤄지기도 했었다. 그 일로 나는 몇 달간 심리적 응급처치(PFA) 교육을 받으며 불안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상담했고,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또한 꽤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진동과 소리에도 발작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집 안 모든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굴던 장면과 여진으로 자다 깨어 공포에 떨었던 시간들은 잊고 싶어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두 발을 딛고 있는 바닥이 흔들리고 몸을 숨겨야 할 곳이 무너지는 상황들은 마치 생존을 위협당하는 듯한 원초적인 불안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그 당시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회상할 수 있지만, 만일 내가 그 일로 소중한 것을 잃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쉬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터키 한국 합작영화 Ayla가 생각나는 그림 (명민호 작가 일러스트 참조)
다음날 아침 터키 첫째 언니가 두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전쟁 당시 우리나라 아이를 구해준 터키 군인과 한국 긴급구조대가 터키 아기를 구조하는 그림이었다. 언니는 자신들이 지킨 형제의 나라가 이번에는 자신들을 돕고 있다며 나에게 대신 고맙다고 했다. 당장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언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교회 예배당을 찾아가 나의 신에게 기도했다.
'사랑하는 터키를 위해 기도합니다. 강도 높은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과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붕괴된 건물 더미 속 생존자들이 삶의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게 붙들어주시고, 계속해서 생명이 구조되는 기적을 허락해 주세요. 나라가 안팎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거듭 발생하는 재난으로 인해 무고한 국민들이 더욱 고통받고 있습니다. 부디 이번 재해를 딛고 터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부어주시고 그 나라 가운데 함께하여 주세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도 나는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의 두 번째 가족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가고 팠고, 슬픔에 잠겨있을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으며, 그 나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곳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것뿐이었고 그래서 나는 무력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지금껏 살면서 겪었던 재난들을 기억한다.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와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와 얼마 전 발생한 이태원 참사까지. '참사'라는 이름아래 발생한 이례적인 재난들은 그 사고를 겪은 생존자와 유가족은 물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까지 오래도록 고통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정 많고 속이 깊은 터키 사람들이 자신들이 함께 겪은 그 아픔을 얼마나 오래 깊이 가슴 아파할지 걱정이 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지금까지 추정되는 것만으로도 100조 원의 피해가 일어났고, 파괴된 모든 인프라를 이전 상태로 복구하는 것에는 1세대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소중한 나라, 나의 두 번째 가족들이 사는 이 나라는 언제 즈음 일상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재난으로 인한 물질적인 손실들은 외부의 도움과 원조로 해결될 수 있겠지만, 이 일을 겪은 이들의 마음속 아픔이 치유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기적처럼 구조된 생존자들에 관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연약한 생명체임에도 재앙 속에 살아남은 기적의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실의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모를 잃은 아이의 생존은 또 다른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용기와 의지'를 갖게 만들어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 기적이 또 다른 기적을 일으켜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친한 싱어송라이터 동생이 터키 지진구호 성금모금을 위한 자선공연을 합니다. 다음 주에 저도 참석하여 작은 마음을 보태려 해요. 혹시 부산에 거주 중이시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공연을 보러 와주셔요. 신청 가능한 링크를 첨부합니다. � https://forms.gle/zobWsqSmEcSyEPQr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