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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산호 Dec 01. 2020

베개가 다 젖도록
눈물을 흘려버렸어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_에피소드 8

“엄마는 울고 싶을 때 어떻게 해? 엄마는 어떨 때 울어?” 


아이가 느닷없이 울음에 대해 물어보니 가슴이 철렁했다. 아장아장 걷다가 꽈당 넘어져서 우는 아기가 아니라, 뭐든 감추려 들기 십상인 십대인 아이가 대놓고 물어보니 두렵고 당혹스러울 수밖에.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는 얼른 달려가서 안고 어르며 달랠 수 있지만 십대의 울음은 도통 이해할 수 없어 불안하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십대의 눈물이 난감한 이유는 그것이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문제도 있고, 개인적으로 엄마에게 밝히기 싫은 일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자신도 왜 우는지 모를 테니까(물어보니 세 번째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혼자 버텨낼 수 없고, 위로받고 싶고, 대처 방법도 같이 찾아보고 싶어서 먼저 손을 내밀었을 마음을 생각하니 나도 울고 싶어졌다. 


“엄마라고 안 울까. 가끔은 울고 싶을 때가 있지. 근데 요즘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왜? 너 요즘 울고 싶니?” 

그러자 릴리는 그 큰 눈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처럼 위태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요즘 매일 울어. 밤마다 베개가 축축해지도록 울다가 자.” 


드디어 두려워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지만 내가 지나치게 동요하거나 놀라면서 호들갑을 떨면 그런 심정이 아이에게 전염돼서 동요하다 입을 다물어버릴까 두려웠다. 나는 속으로 심호흡하며 대답했다. “그랬구나. 왜 울었어? 말해봐.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와줄게.” 


릴리는 자신의 마음을 나름 소상히, 하지만 여전히 또렷하진 않게 설명했다. 나는 생각해낼 수 있는 해결책을 몇 가지 말해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항상 옆에 있을 것이고, 넌 결국 이 어려움을 이겨낼 거라는 말과 함께. 

릴리가 처음 울었던 때를 떠올려본다. 배가 고프다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거나, 어디가 아파서 우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난감했던, 슬퍼서 터져 나온 첫 울음. 


릴리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일이었다. 휴일인데 마침 급한 마감이 있어서 릴리와 같이 놀아줄 수 없었던 나는 영화 <마음이>를 틀어줬다. 릴리는 그때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열병에 걸려 있었으니까. 예상대로 릴리는 그 영화에 빠져들었고, 나는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었다. 


한참 자판을 치고 있는데 느닷없이 릴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달려가 보니 마음이가 고난에 처한 장면에서 터진 울음이었는데,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았다. 마음이가 지금은 힘들지만 곧 사랑하는 주인을 다시 만나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스포일러를 터트려도 릴리는 마음이가 너무 불쌍하다며 울고 또 울었다.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눈물이 끝도 없이 나오던지. 릴리를 꼭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릴리의 울음은 유치원 졸업식에서였다. 서울에서 살다 경기도로 이사 와서 릴리는 일 년 동안 집 앞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처음 들어간 반의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몇 년 동안 같이 다닌 사이라 릴리가 서먹해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아이들이니 금방 친해질 거라고 믿었던 내 생각은 짧았고, 릴리는 거기서 따돌림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유치원 졸업을 앞둔 두 달 전쯤 일어난 일이었다. 


교사들에게 그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시정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오늘도 아이들이 놀리면서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는 릴리의 하소연을 들으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유치원을 그만둘까 싶다가도 두 달이란 시간이 어중간해서 어쩌다 보니 졸업식까지 갔다. 어쩌면 그 아이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난다. 


후련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졸업식이 끝나는 순간 릴리가 울기 시작했다. 꼬맹이들이 졸업이 뭔지 알겠냐 싶었던 학부모들은 모두 아연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안이 벙벙했던 사람은 나였다. 죽고 못 사는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왕따도 당한 마당에 왜 그리 울었을까? 뒤늦게 서러워서? 나는 우는 릴리를 껴안고 물었다. 


“왜 울어?” 

“나도 모르겠어.” 

그렇게 대답하는 릴리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그 후에도 릴리는 같이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잘 울었다. 슬그머니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아이의 슬픔을 내가 해결해줄 수 없어 걱정되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일에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그 마음이 걱정되고, 앞으로도 저렇게 울 때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할 경우를 떠올리며 걱정이 됐다.      


난 그리 다정하지 못한 편이라, 내 앞에서 우는 사람을 보면 예전에는 어찌할 줄을 몰라 머뭇거리면서 살갑게 챙겨주지 못한 적도 많았다. 이제는 부단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 그런 나도 자식이 울면 억장이 무너진다. 


릴리는 그때 울었다고 고백한 후로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혼자 베갯잇을 적시는 밤이 있었겠지만 내게 SOS를 칠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라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릴리를 보면 조금은 안심이 되고 다행이다 싶다. 작은 몸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오열하던 아이는 이제 자신의 울음을 주체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앞으로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 번번이 찾아오겠지. 그래도 릴리는 자신의 울음을 감당하는 법을 스스로 익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장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 그랬듯 나 요즘 힘들다고, 운다고 가끔은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하나는 할 수 있으니까. 꼭 안아주며 내가 옆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 그거 하나는 잘할 수 있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박산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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