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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순 Aug 12. 2024

긴 인생을 위한 적당

대충이 아니라 내게 알맞게

지난주 긴 인생을 위한 절실이란

글을 썼어.

덜어내고

필요한 것은 채우는

내 절실切實 앞에서

집요執拗해지고 싶어.


그런데 집요가

때론 집착執着이 되더라고.

내가 생각하는

집요와 집착의 차이는

거리 두기 여부야.

집착이 되어버리면

붙을 착着

말 그대로 착 붙어버리는 거지.


내 마음과 행동을

돌아볼 최소한의 거리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시간이 있었어.

인사이드 아웃2의

불안이처럼 멈출 줄을 몰랐지.


몇 차례 자빠지면서

나는 내게 필요한 적당適當을

수집하게 되었어.

적당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


공자는 칼날 위에 설 수는 있으나 중용에는 능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적당한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대개는 많거나 적다. 흔히 ‘적당하게’라는 단어를 대충 하라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알고 있으나 ‘적당’은 그런 뜻이 아니다.

진화하는 생물이 환경에 맞게 변화해 가는 것을 적당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알맞은 행동을 뜻함이다.p286


김승호 지음, 공자의 마지막 공부



진화하는 생물이 환경에 맞게

변화해 가는 것,

적당은 대충이 아니라

알맞은을 향한 태도였어.

중용中庸이 떠올라.


과유불급過猶不及

논어에도 나오잖아.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고.

집요가 집착이 될 때

채움에서 비움으로 향하는

신호도 바뀌고 있어.


이 신호는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마치 더 많이 더 빠른 것이

좋은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자본주의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됐어. 그거면 충분해. 이제 그만 쉬자"

유발하라리 지음, 호모데우스


공기 같은 광고에서도 이러잖아.

넌 지금 이러한 게 필요하다고.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과 속도, 방향을 덜어내면 뭐가 남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두려워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묻어 두었던 물음표를

꺼내어 나만의 느낌표를

만들어가고 있어.


적당適當에 쓰이는 맞을 적適자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내가 가야 할 적합할 길을

고른다는 뜻이었다는 유래도 있어.


내게 알맞은 길을

고르기 위해서는

안 맞는 길도 가보고

때로는 없는 길을 만드는

과정도 있을 거야.

외롭고 힘들 수 있어.

그래도 남에게 맞는

길을 평생 살다 갈 순 없잖아.

맹목적 최선보다

적당이 지금 내게

더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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