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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알고리즘 11 : 데이터와 열정 사이

by 여기반짝



한낮의 놀이터같던 보호소의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전의 활기가 사라진 건 C구역 개들에게 퍼진 원인 모를 증상이었다.

사료도 바꾸고, 소독도 강화했지만, 개들의 발열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는 봉사자들 사이에서 지혁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애수는 섬처럼 동떨어져 있는 그의 무심함을 질책하듯 눈 흘기며 스쳐 지나갔다.

봉사자들은 병증의 원인에 대해 저마다의 추측을 늘어놓았다. 정답은 없었다. 공통적인 것은 주말 직후에 특히 증상이 심해진다는 점.

흥분한 애수는 주말 잠복근무를 제안했고, 어른들이 이를 말리는 눈치였다.


한편, 지혁의 눈은 CCTV 영상 혹 화면의 미세한 틈새를 파고들고 있었다.

결론은 명료했다.

출입 기록, 사료 유통 경로, 개체별 증상 발현 시간…


'사료와 무관한 외부 투입 변수가 있어.'


지혁의 손가락이 CCTV 타임라인 위에서 멈췄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 3시 07분 14초.

보호소 뒤편의 적외선 카메라가 자동으로 감광을 높이며, 어둠 속을 흐릿하게 가르는 두 개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그리고 화면 속, 후드와 마스크를 뒤집어쓴 청년 하나의 동선에 주목했다. 그는 마치 카메라 위치를 계산이라도 한 듯, 사각지대를 따라 움직이며 창고 문으로 다가갔다.


지혁은 태블릿을 두 손가락으로 벌려 CCTV 영상을 확대했다.
보안기관용 딥스캔 모듈이 금속 케이스 표면의 잔광을 잡아내자, 화면에 희미한 라벨 문자가 드러났다.


[텍스트 인식 실행]
└ "신경안정제 / 면역억제제 / 실험 코드명 X-23"


지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즉시 태블릿 내 분자 분석 프로그램이 구동되었지만, 곧 보안 경고가 떴다.


[성분 분석 요청: X-23]
└ 데이터 접근 제한
└ 바이패스 코드 입력 필요


지혁은 망설임 없이 해킹 스크립트를 호출했다. 암호화 해제 과정이 빠르게 흘러가고, 몇 초 뒤 차가운 전자음과 함께 성분 구조가 출력됐다.


[결과 출력]
합성 신경 안정 화합물: β-하이드로시 놀린
변형 면역 억제 단백질: IL-9X
유전자 교정 촉매: CRISPR-Xi
위험 등급: Class Omega



지혁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실험이라기엔... 그냥 광기군.”





그날 새벽 2시 40분. 보호소 반대편의 좁은 복도.

애수는 두 그림자를 좇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평소 따뜻하게 웃던 사람들이었기에 더 두려웠다.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손등에 부착한 소형 카메라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봉사자들, 이제 낯선 침입자인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듯 서성이다가 나가려는 듯했다.


그때 한 봉사자가 갑자기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복도 끝—조명이 꺼져 음영이 깊은 구역으로 향했다.

사료 보관소에서 봉사자들의 휴게실로 통하는 작은 통로.


'결정적인 증거가 있을 거야.'


애수는 이미 안면이 있는 여린 체구 남자를 좇았다.

조심스럽게 문의 틈 사이로 들어섰을 때, 문 뒤편과 벽 사이로 서서히 드러난 검은 그림자.


“알아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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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놀라는 눈빛을 본, 남자는 혀를 살짝 내밀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가 마스크를 천천히 벗었다. 눈빛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빛났다. 그리고 흰 수건을 꺼내 애수의 코와 입을 감쌌다. 손놀림이 재빨랐다.

차가운 천이 피부에 닿는 순간, 애수의 눈앞이 얇은 안개에 휩싸인 듯 흐려졌다. 그는 애수의 귓가에 입을 갖다 대고 낮게 속삭였다.


“나도 개들을 살리려는 거야. 물론, 미래의 수많은 개들이겠지만.”


그 말투에는 이상한 확신과 자애가 섞여 있었다.

그의 손이 잠깐 떨렸고, 그윽한 눈빛으로 애수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너... 애수씨. 나 당신을 알아. 개들을 돌보는 모습이 예뻤어. 그러니까, 당신은 나와 함께 가는 거야.”


애수는 억지로 눈을 뜨려 애썼다. 입안이 바싹 말라왔고, 생각의 파편이 흩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구원의 신음을 흘렸다.


“안돼….”


그 소리는 한 줌의 힘도 없었다. 의식이 아득히 꺼져가고 있었다.






흐려가는 의식 한가운데, 문 열리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지혁이었다. 그는 어둠 속 청년과 애수를 번갈아 보며 냉소를 흘렸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멍청이나, 유기견으로 실험하는 얼간이나.”


지혁은 태블릿을 들어 흔들며 비웃었다.


“네가 들고 있던 케이스, X-23 실험약 맞지? 신경 억제 부작용률 72%. 지속적 투입 부작용은 폐부전으로 직행. 네 데이터는 이미 망가졌어.”

"아니 우리는 부작용을 낮추는 약물 배합에 성공했어! C구역 개들, 경과가 좋아지고 있어. 몇 개의 결괏값만 얻는다면 수많은 개들을 살릴 수 있어!"

"아니,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어. 네 백신은 가망이 없어. 개들에게 호전적인 증상은 없었어."


청년이 분노와 당황으로 지혁을 향해 소리칠 때, 그 순간 애수가 힘겹게 몸부림쳤고, 틈을 노린 지혁이 달려들었다. 휴게실 주변에 있던 청소용 갈고리가 휘둘러지고, 지혁의 허리에 묵직한 충격이 꽂혔다. 청년은 그 틈에 어둠 속으로 뛰어 나갔다.


“윽—!”


그는 신음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허리를 움켜쥔 채, 그는 한 음절씩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움직이지 마. 괜찮아.”


어둠과 침묵 속에서 힘에 겨운 둘의 숨소리만 겹쳤다.

애수의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약물이 남긴 잔향이 머릿속을 눌러오고,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쇳덩이가 그에게 남긴 상흔이 어렴풋이 떠오르자, 애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상처를 눌렀다. 피가 번져 손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왜… 왜... 여기에...”

“데이터가 그랬으니까. 새벽 세 시, 이곳에서 어떤 비상식적인 인간이 위험에 빠질 확률... 99.2%.”


지혁은 말을 더 잇는 대신, 이를 악물며 그녀를 지탱하고 천천히 일어섰다.

흐린 의식 속, 애수는 그 버티는 몸이 차갑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를 느끼며 의식을 잃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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