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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Nov 11. 2019

[초단편소설] 보통 사람을 위한 출사표

우리는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백년 전 즈음까지만 해도 딱 하나 공평한 것이 남아있긴 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생명이 있다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죽음. 왕이든 노예든 부자든 거지든 결국에는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수천년간 불공평을 인식하면서도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이라는 생각으로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며 살았다.


지금은 2219년. 마지막 공평의 영역이었던 죽음마저 공평하지 않게 된지 백년 정도 됐다. 이제는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생명공학, 유전공학, 로봇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며 일부 사람들은 노화나 불치의 병으로 신체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기 힘들어지면, 뇌의 기억과 기능을 통째로 복사해, 로봇에 이식시켰다. 사고 능력과 생각과 기억은 그대로, 몸만 로봇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사람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로봇인간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기술이 될 수 없음은 간과했다. 로봇의 몸으로 살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따지면 강남에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이 든 부자들부터 이 기술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역시 돈이 많으면 별 걸 다 할 수 있구나 라고 감탄하며, 자신도 돈을 많이 벌어 영생을 누리는 꿈을 꿨다. 하지만 보통 인간이 가진 신체능력은 로봇인간들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잠도 안자고 지치지도 않는 로봇인간들은 보통 인간들보다 별다른 고통이나 부작용도 없이 일을 더 많이, 더 실수없이 했다. 능력의 차이가 생활의 격차를 더 벌렸다. 로봇인간들은 점점 더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하며 부를 축적하고, 보통 인간들은 단순노동에 저임금 일자리만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나눠졌다.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 나는 돈만 있으면 영생도 가능한 세상, 그 혜택을 부자들만 누리는 세상을 바꾸려 한다. 좋게 말로 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하기로 한다. 조금 과격해지기로 했다. 오늘 밤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내가 추진한 ‘다시 인간을 위해’라는 집회가 광화문에서 있다. 곧 그곳에 도착한다.


집회 참석자들이 많아서 종로의 골목들까지 꽉 찼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이크를 동대문 쪽에 세우고 걸어간다. 주변에서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이지훈이다! 이지훈이야!” 라며 반가워했다. 나를 알아본 사람들은 내 뒤를 따랐고, 점점 그 수가 많아졌다. 광화문까지 내 발걸음이 향하는 쪽으로 사람들이 길을 열어줬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어려움 없이 광화문까지 걸었다.


광화문 바로 앞에 설치된 연단으로 올라갔다. 대로부터 골목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내가 주먹 쥔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람들의 함성에 서울이 떠나갈 듯 흔들렸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참았습니다. 상위 3%의 부자가 전체 사회 부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여기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위 3%의 사람들은 이제 로봇인간이 되어 죽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절대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소시민들은 그들에게 휘둘리고 있습니다. 군말 않고 휘둘림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과거 신분제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당하고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펼칠 평등한 기회가 필요합니다.” 아까 보다 더 큰 함성이 들렸다.


“정재계에 이 같은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자고 수없이 건의했습니다. 그들은 알았다고만 할 뿐 그들의 지배체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고민만 더 했습니다. 오늘 밤부터 우리는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무엇을 원합니까?”


“로봇에게 죽음을! 로봇에게 죽음을!”


“좋습니다. 그럼 먼저 로봇인간들을 이 자리로 데려와야겠군요”

“와아!!” 함성이 터졌다.

“자 그럼 여기서 가까운 평창동부터 갑시다”


한켠에 세워져있던 버스 오십여대에 시동이 켜진다. 사람들이 함성과 함께 버스에 탑승한다. 나도 맨 앞 버스에 탑승한다. 버스에 타지못한 수백만명의 군중들은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며 행진곡 같은 리듬을 만들어 낸다. 광화문 광장에 천둥이 치는 듯 하다.


버스의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민다. 얼굴에 닿는 밤공기가 상쾌하다. 오늘 이후 세상이 기대되는가. 나는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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