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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Nov 16. 2019

[초단편소설] 엄마, 기억나?

감당해야만 하는 슬픔

“엄마, 기억나? 옛날에 녹색어머니회 하던 거?”


엄마와 아침산책을 하던 중에 내가 물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한지는 한달 정도 됐다. 체력이 조금 회복되자 바깥공기 쐬는 걸 원하셔서 오늘 처음으로 산책에 나섰다.


회사에는 양해를 구하고,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 까지는 오후에만 출근하기로 했다. 급여가 절반으로 줄긴 했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엄마에게 형제나 자매가 많았으면, 나에게 형제나 자매가 있었더라면,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침을 먹고 나선 산책시간은 초등학교 등교시간과 비슷했다. 산책코스로 집 근처 공원을 가기로 했는데, 가는 길에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녹색어머니회가 깃발로 길을 열어주며 활동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엄마도 30년 전 즈음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엄마가 대답했다. “기억나지. 녹색어머니회 봉사 나가는 날은 내가 너보다 일찍 나가는데, 이게 기분이 이상한거야. 매일 등교하던 길인 걸 알고 있지만, 얘가 잘 올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가 못 챙겨주고 나온게 있지 않나 마음이 계속 쓰이고. 이제오나 저제오나 기다리고 있는데, 너가 어느샌가 횡단보도 앞에 와서 깡총깡총 뛰면서 나한테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면서 손을 흔드는 거야. 나는 그게 얼마나 반갑고 귀엽던지. 너가 별일 없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돕는 것도 좋았고. 너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뿌듯했어. 정말로.”


이제 엄마는 그때의 엄마와 다르다. 기운이 없고 허리는 구부정해졌고 걸음도 느리다. 예전에 내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것처럼, 이제 내 손을 꼭 잡고 산책한다.


“엄마, 이제는 내가 엄마 지켜줄게. 걱정하지마”


“지영이 너도 길 건널 때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좌우 잘 살피고, 꼭 신호 바뀐 다음에 건너고. 운전할 때도 조심해. 언제나 안전운전. 이거 명심하고, 양보하면서 해라. 끼어드는 사람 다 끼워줘. 그게 좋은거야”


“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엄마는 내가 아직 아이처럼 보이나 보다. 


문득 세월이 야속하다. 늙고 병들고 죽고 누군가는 또 어디선가 탄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어쩔 수 없이 개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슬픔들은 피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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