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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Apr 12. 2019

[초단편소설] 그는 왜 악수대신 포옹을 하게 되었나

남자화장실의 사정

지훈은 지금이 딱 악수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저도 반가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지훈은 그 남자를 포옹했다. 남자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끼리의 인사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인사법에 당황한듯 보인다.


지훈은 남자와의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악수를 해야 되는 상황이 오면 포옹으로 대신한다. 여자들과는 악수를 하기에 지훈의 성적취향이 동성애 쪽인가 라는 의심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다 남자화장실에서 본 풍경 때문이다.


지훈이 회사의 화장실에서, 파견근무를 나간 다른 회사의 화장실에서, 대형전시장에서 행사를 할 때 그곳들의 공중화장실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이 밖의 수많은 화장실에서 남자화장실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은, ‘그들을 손을 잘 닦지 않는다’ 였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순간은 이럴 때다. 세면대가 하나 있는 작은 화장실이다. 지훈은 이를 닦고 있다. 누군가 들어온다. 소변기 앞에 서서 바지밖으로 음경을 꺼낸다. 물론 손을 이용해서. 그리고 오줌이 나오는 동안 손으로 음경을 잡고 있고, 볼일을 다 보면 손으로 음경을 살짝 흔들어 끝에 매달린 오줌 방울들을 털어낸다. 그가 볼일을 마치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지퍼를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지훈은 그가 나가기 전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몇 걸음 비켜선다. 그리고 소변을 본 그는 그냥 나간다.


어허. 이것 봐라?


사실 이보다 지훈을 충격에 빠트린 것은 변기칸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칸에서 푸드득푸드득 등의 소리가 들리고 난 후, 두루마리 휴지가 돌돌 풀리는 소리, 두루마리 휴지를 끊는 소리, 비데가 있는 곳은 삑 삐리릭 띵동 같은 소리가 난다. 쏴아아 물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바지를 올리고 지퍼를 올리고 허리띠를 다시 조이는 소리가 들린다. 칸의 잠금장치가 풀린다. 칸에 있던 사람이 나온다. 


지훈은 세면대에서 몇 걸음 물러나 칸에서 나온 그에게 ‘세면대를 쓰셔도 됩니다’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칸에서 나온 그는 그냥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이럴 수가. 안돼. 그러지마.


지훈은 백번 양보해서 소변까지는 그렇다 쳐도 대변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휴지를 사용한다고 해도 자신의 배설물이 나온 항문을 그 손으로 닦았을테고, 비데의 스위치를 그 손으로 조작했을 것이며, 잠금장치를 그 손으로 열고 닫고 했을 것 아닌가. 


어딘가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변기의 물을 내릴 때 대소변의 입자가 튀어 오른다던데, 손을 씻지 않고 나간 그의 손에는 대소변이 묻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손을 씻지 않고 나가다니 대체 왜 그러는 것이란 말인가.


지훈은 화장실에서 본 장면에 그의 상상력이 더해지자 더욱 괴로워 했다. 그 손으로 누구를 만나 악수도 하고 핸드폰도 만지고 버스와 지하철의 손잡이도 잡고 엘리베이터의 버튼도 누르고 자동차의 핸들도 잡고 애인 또는 아내의 볼도 만지고 아이의 손도 잡고 머리도 쓰다듬고 식당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서 상대방의 앞에 놔주고 사무실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고 다시 화장실에서 성기를 만지고 항문을 닦겠지. 


그리고 또 다시 누구를 만나 악수도 하고 핸드폰도 만지고 버스와 지하철의 손잡이도 잡고 엘리베이터의 버튼도 누르고 자동차의 핸들도 잡고 애인 또는 아내의 볼도 만지고 아이의 손도 잡고 머리도 쓰다듬고 식당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서 상대방의 앞에 놔주고 사무실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고…으아악!


그래서 지훈은 남자들을 만난 후 악수를 해야 할 타이밍이 오면 노심초사다. 예의상 악수를 거절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거부, 부정, 모욕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진 못하고 좀 과하다 싶은 느낌이 들더라도 포옹을 한다. 


이렇게 그에게는 매일 고난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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