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미장 Oct 03. 2019

[초단편소설] 애쓰는 하루

기대와 노력은 보상받는가


“우리 집에 가서 더 놀까?”

토요일 밤 11시경. 지훈이 이 말을 유진에게 던진 것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훈은 오늘 그녀와의 두번째 데이트에 나서기 전 바빴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물걸레질 하고, 쌓인 설거지를 하고, 침대 시트를 교체하고, 그 위에 라벤더향 룸 스프레이를 뿌렸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의 세면대와 변기와 바닥까지 박박 닦고 나니 지쳐서 잠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지훈은 천장을 보며 오늘밤을 생각했다.


지훈이 토요일 오전 내내 집안일에 매진한 것은 바로 저 한마디를 던지고, 대답이 ‘예스’가 나올 것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그녀는 놀랐지만 싫진 않은 눈치다.

“응. 오늘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어” 지훈은 그녀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한번 더 당겨본다.

“음…” 유진은 지훈의 눈을 본다. 몇 초간 그냥 바라본다. 두번째 데이트에 남자 집까지 가면 너무 가벼워 보이진 않을까. 뭐하고 놀자는 얘기지. 섹스를 하게 되려나. 오늘 속옷을 예쁜걸 입고 왔던가. 위아래 세트로 맞췄던가. 지훈은 콘돔이 있을까. 오늘은 안전한 날인가. 저녁을 많이 먹어서 배가 나와 보이진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듯 하다.

“…응?” 지훈은 간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오빠 집에 가서 더 놀자” 유진은 지훈의 제안을 수락했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생각 중 뭐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도, 100% 마음에 드는 것도 없었을텐데 수락을 하다니, 그녀도 지훈이 좋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나 보다.


둘은 택시를 타고 20분만에 지훈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그 둘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과 거의 비슷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라는 말이 이렇게 딱 맞을 때가 있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된 열정적인 키스, 흥분으로 엉킨 둘의 몸을 주체할 수 없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휩쓸리는 모습, 침대로 이동하는 동안 끊이지 않는 키스, 발걸음 마다 바닥에 떨어지는 옷들.


속옷만 걸친 채로 둘은 침대에 도착했다. 등을 매트리스에 대고 누운 유진의 위에서 지훈이 키스를 했다. 목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가 신음처럼 말했다. “오빠 우리 씻고 할까?” 유진은 한여름 데이트에서 흘린 땀과 끈적한 느낌이 조금 신경쓰였다.

“어. 그럴까? 그러자” 지훈이 그녀의 목에서 입술을 뗐다. 

“오빠 먼저 씻어”

“그래. 그럼 나 먼저 갔다올게” 지훈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추고 난 후 속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지훈은 거울에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라고 생각한다. 샤워기의 물을 튼다. 밖에 있는 유진과의 섹스를 생각하니 머리를 감는데도 발기가 된다. 어허. 지금부터 이렇게 흥분하면 본 게임에서 얼마 못가겠는데. 안그래도 조루가 좀 있는데. 유진이와의 처음은 잘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한번 빼고 나가야겠다. 잠깐만 쿨타임 있으면 또 금방 서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지훈은 샤워기 물을 맞으며 자위를 시작한다. 하수구 쪽으로 정액이 흘러 들어간다.


유진이 샤워하러 들어간 동안 지훈은 몇 가지 준비를 더 했다. 침실 천장의 형광등을 끄고, 무드등을 켰다. 아직 밤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에어컨을 켰다. 그냥 나신으로 있으면 춥지만 서로 안고 있으면 체온으로 따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적당히 온도를 맞췄다. 책상 서랍에 뒀던 10개들이 콘돔 박스에서 3개를 꺼내 베개 밑에 뒀다. 오늘은 한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두번도 모자라니까.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하고 애플뮤직에서 Sade의 에센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By Your Side>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흐르자 지훈은 이 상황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Sade - By Your Side


유진이 샤워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왔다. 침대에 다다르자 타올을 풀어 바닥에 떨어뜨리고 지훈이 있는 침대로 올라와 얇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유진이 고개를 돌려 지훈을 봤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참을 수 없어 지훈은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둘은 곧 자신의 입술과 손으로 서로의 온몸을 탐험하고 맛보기 시작했다.


슬슬 다음 순서로 넘어가야 할 타이밍이 왔다. 그런데 지훈은 걱정이 하나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를 탐하고 있는데도 그의 페니스는 변화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유진도 이 상황이 노멀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그의 다리 사이를 집중적으로 맛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훈의 페니스는 방금전의 자위 때문인지, 큰 기대로 인한 긴장 때문인지, 잘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아 왜 이러지 이런적 없었는데. 유진아 미안해. 이럴리가 없는데. 내가 오늘 되게 미안하게 됐네” 약간의 시간만 있으면 변신에 문제를 겪지 않았던 지훈이기에 이 상황이 아주 당황스럽다.


유진은 괜찮다고 하며 지훈의 옆에 누워 천장을 봤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는다. 턱이 아픈지 손으로 턱근육을 살살 문질렀다. 지훈이 그녀를 보며 또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지훈의 가슴에 손을 가져가 두어 번 토닥이며 또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사람의 표정이 아니다. 


아무 대화 없는 침실에서 분위기 파악 못한 Sade만 노래하고 있다.

이전 06화 [초단편소설] 어떤 사디스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