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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Aug 18. 2019

[초단편소설] 소개팅 48시

5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는 그녀와의 연애를 상상하고 있었다

지훈은 지난 일요일,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하게 될 것을 거의 확신했다. 적어도 한번쯤 더 만나는 것은 백퍼센트 확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소개팅의 분위기가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맥주 한잔 하기까지 4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모를 정도였다. 대화는 재미있었고, 취향도 잘 맞았다. 귀여운 외모는 그의 마음을 달궜다. 지훈은 그녀의 웃음에서 호감을 읽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호감의 눈빛에 그도 설레였다. 그녀의 웃음을 더 자주보고 싶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주고받은 카톡에서는 다가오는 한주의 일정을 공유했다. 또 연락하기로 했다.


지훈의 생각은 이미 사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와의 첫키스는 한강공원 같은데서 야경보면서 가볍게 뽀뽀처럼 하는게 좋겠지? 키운다고 하는 고양이는 나중에 같이 여행갈 때 누구한테 맡기지? 같이 보는 첫 영화는 뭘까?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이 될까? 그 영화 개봉은 한참 걸릴텐데. 그건 안되겠네. 그 때 즈음이면 이미 사귄지 한참 됐을 테니 영화를 봐도 이미 몇편은 봤겠다. 섹스는 우리 둘 중 한명의 집에 놀러갔을 때 자연스럽게 하는게 좋겠고. 콘돔을 사둬야겠네. 그녀의 살결은 어떨까. 부드러울 것 같아.


월요일에 출근한 지훈은 일을 하면서도 그녀에게 연락할 생각뿐이었다. 낮부터 연락하면 너무 급해보일 수 있으니까 저녁에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됐다. 지훈은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하루 잘 보냈어요? :)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있으세요?”


한시간이 지났다. 그래 나도 걷다 보면 카톡 온 거 모를 때 있어. 지훈은 생각했다.

두시간이 지났다. 그래 요즘 카톡이 이상하게 몇시간 뒤에 올 때가 있더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세시간이 지났다. 그래 나도 친구들이랑 놀다 보면 카톡 온 거 알아도 답을 못할 때가 있지. 지훈은 생각했다.

네시간이 지났다. 그래 가끔 나도 카톡 답한다는 걸 깜박하고 못할 때가 있지. 지훈은 생각했다.

다섯시간이 지났다. 그는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카톡을 못 보는건가 궁금해졌다. 채팅방으로 들어갔더니 1이 없어져 있다. 그래 나도 집에 오자마자 잠깐 쉴라고 누웠다가 바로 잠들 때가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 미안하다며 연락오겠네. 괜찮아. 난 그런걸로 화 안내. 지훈은 생각했다.


다음날이 됐다. 하루 종일 답이 없다.

지훈은 오랜만에 퇴근길에 담배를 샀다. 까만 하늘에 흰 연기를 길게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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