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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Sep 15. 2019

[초단편소설] 완벽한 소개팅

그래도 이 연애를 원한다면

“우리 어떻게 될지 알아요?”

여자가 자리에 앉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남자가 한 말이었다.

여자는 소개팅에서 이런 질문을 한 남자는 처음이지만 재미있군이라는 표정으로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미친 소리처럼 들려도 일단 한번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게는 몇 년 후의 미래가 보여요. 저와 관련된 미래만” 남자가 말했다. 표정이 진지한 것으로 봐서 장난은 아닌 듯하다.

“오 그래요?”

“우리가 오늘 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지게 된다면…”

“된다면…?” 여자는 계속 리액션을 해준다.


“우리는 곧 두번째 약속을 잡고 영화를 같이 봐요. 그리고 손도 잡아요”

“저는 여태까진 사귄 다음부터 손잡았었는데. 그리고 나서요?” 여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다음엔 세번째 약속을 잡아요. 가을 날씨가 좋다며 서울숲에 가기로 하죠.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많은 이야기를 해요. 그러다가 제가 말하죠. 우리 한번 만나보자고. 수영씨는 승낙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요”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보고 말한다.

“흥미롭네요” 여자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식으로 만나기 시작한 뒤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사랑에 빠져요.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하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여행도 같이 가고, 서로가 없이는 못살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금방 화해하고, 그게 우리의 사랑에 균열을 일으키지도 못해요”

“행복한 연애를 하는군요” 여자가 공감을 표하는 말을 했다.


“네. 맞아요. 엄청나게 행복한 시절을 보내요. 하지만 서서히 열정이 식어 3년 1개월 정도 지난 늦가을 즈음 헤어지게 되요. 너무나 깊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소중한 추억도 많이 만들어서 이별이 지독하게 아파요” 남자의 표정에 쓸쓸함이 희미하게 스쳤다.

“깊었던 사랑은 헤어나오기 힘들죠” 여자도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여기까지에요. 이 다음에는 저도 아직 몰라요” 남자는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상체를 기울여 이야기하던 자세를 바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흠… 그렇군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레스토랑안의 다른 테이블들로 시선을 옮겨 천천히 둘러봤다.


“그래도 이 연애를 원하면 이제 식사 주문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 가셔도 좋아요. 이 레스토랑을 나가시면 지금 제가 말한 미래는 바뀌게 돼요” 남자가 말했다.


“난 일단 지훈씨가 마음에 드네요” 여자가 다시 남자에게 시선을 옮겨 말했다.

“저도 수영씨가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요?”


“어떻게 될 지 안다해도 상관없어요. 나는 인생에서 기쁨과 슬픔이 반복된다는 걸 알아요. 그게 우리 삶 이잖아요. 그리고 그 순간마다 마음껏 행복해하고, 마음껏 슬퍼할 거에요” 여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남자도 미소로 화답했다.

“좋아요. 그럼 음식 주문해볼까요. 뭐 드시겠어요?” 남자가 메뉴판을 여자의 앞으로 잘 보이게 돌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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