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Apr 19. 2020

맞벌이 3인 가족 주택행. 우리, 사고 친 걸까?

프롤로그2_연극이 끝나고 난 뒤 

계약이 성사되고 난 뒤, 첫눈에 반한 그 집에 줄자를 들고 다시 찾아갔다. 이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됐다. 벚꽃잎이 날리는 집과 조용한 주택단지 골목은 여전히 그림 같았지만. 막상 이런저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는 내 마음이 지난번 같지 않았다. 구름 타고 내려다보듯 둥 떠 있던 마음은 '복층형이면 겨울에 얼마나 추울까'로 내려앉았다. 이제, 현실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친정과 멀어지는 거였다. 차로 이동했을 때 10분 거리에서 35분 거리로 멀어지는 정도. 주말 근무 때 아이를 맡아주시는 친정 부모님은 이제 운전을 못 하신다. 대중교통으로 오시려면 전보다 많이 멀어지게 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상한 엄마는 집을 보자마자 나쁜 소리만 연신 이어가셨다. '1층이 넓기만 하고 쓸모가 없다'는 식. 나중에 해주신 말씀으로는 멀리 가는 게 싫어서 그러셨다 한다. 어쨌든. 엄마의 평가에 나도 마음이 상해버렸다. 


또 막상 들어가려고 보니,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규격화' 돼 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집에 있는 커튼 하나 떼 와서 달지 못할 상황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들어갈 자리도 없었는데, 이 부분은 집주인이 새로 수리해서 마련해주기로 했다. 거실에 TV 자리도 애매했다. 아파트는 딱 들어가면 여긴 소파, 여긴 TV, 여긴 식탁... 어지간하면 '제 자리'가 이미 마련돼 있는데. 집주인이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지은 주택은 독특하지만 '정답'이 없었다. TV를 벽 면에 달자니 소파가 거실을 가로지르는 게 싫었고. 벽면에 소파를 붙이자니 TV 자리가 애매했다. 안방 안쪽이 드레스룸이라 두세 걸음 사이에 옷 입고 화장하고 외출 준비가 가능했던 아파트와 달리, 우리가 들어갈 주택은 드레스룸이 다른 방에 마련돼 있었다. 아무래도 불편하겠다 싶었다. 

주택에는 '제 자리'란 게 없다. 공간 배치를 위해 상상력이 필요하다.


흰 도화지에 밑그림부터 그리기보다, 밑그림이 다 그려진 캔버스에 번호 순서 맞춰서 색깔만 칠하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그릴까? 저렇게 그릴까?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밑그림을 척척 그려내는 '감각'도 없다.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격화된 삶에 갇히기는 또 싫었다. 편리하단 이유로 삶이 너무 사는 것 같지 않은 게 싫었다. 평일 내내 일하고 지쳐서 자다가 주말이면 도망가듯 집 밖으로 나가 여행지로, 쇼핑몰로 나가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다. 그냥... 흙냄새 좀 맡고 살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남편이 올해부터 시간 여유가 많아졌다. 나는 '언제고 일을 좀 줄여야 되는데' 생각하던 차였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두 달 가까이 '집콕'을 하면서 '집'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때가 된 것이다!




주변에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들은 '관리가 힘들다던데'였다. 막상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게 됐어요'라고 하니, '부럽다'라고 말하는 지인들이 여럿 있었다. 남편은 "다른 게 아니라, 용기가 부러운 거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규격화되지 않은 건 불편함이지만 '재미'기도 하다. 재미를 발견해낼 수 있느냐-라는, 내 몫이 남았을 뿐. 함 해보자. 

이전 03화 덜커덕, 계약이 성사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