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소설] 저 너머의 하늘 #15.

by 이글로

사실 별 것 아닌 한 마디였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스스로를 합리화하기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할 수도 있었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휘영은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녔다. 누군가에게 해를 입혀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 일에 발을 담그겠노라는 말을 내뱉는 건 무던히도 큰 고민이었다. 경찰이라는 직업과 그에 따라 지켜야만 하는 윤리라는 게 있다. 아니, 애초에 그녀로 하여금 경찰의 길로 이끌었던 윤리적 가치관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또한, 이 선택이 과연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과연 그들은 휘영의 선택을 이해하고 헤아려줄 수 있을까? 짧은 대답 하나에 따라오는 것치고 엄청나게 버거운 무게가 머리를 짓누른다.


"명쾌해서 좋군요. 시간이 좀 더 걸릴지도 모른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의외로 화끈하신 면도 있다고 할까요."


명쾌하단다. 이게? 정말이지, 눈치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이런 문제를 '화끈하게'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훌륭한 근거다.


"아무튼 이제 결정을 하셨으니 됐습니다. 궁금하신 게 있다면 다시 질문 받겠습니다. 보안 잠금이 해제됐으니 어떤 것이든 답해드리죠."

"에……? 그냥 그게 끝이에요?"

"음? 무슨 말씀이신지?"


휘영은 뒤이어 던지려던 질문을 도로 밀어넣는다. 그래, 평범한 경우라면 계약서라든가 최소한 각서 같은 서류철 같은 게 등장할 타이밍이었을 게다. 하지만 명색이 다른 세상에 산다는 존재들이 그런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럼 다른 방식으로도 뭔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피의 서약(?)이라든가, 영혼의 의식 같은… 영화나 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 흔히 묘사되곤 하는 그런 거.


그렇지만, 그런 건 휘영 쪽에서 구태여 들춰낼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쓸데없이 발목 잡힐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저쪽에서 그냥 넘어가겠다는데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는 법. 본의 아니게 속임수를 쓰는 것 같아 양심에 좀 찔리긴 하지만… 정 그렇다면 일단 필요한 정보부터 충분히 긁어모은 뒤에 슬쩍 떠봐도 될 일이다.


'일이 잘못되면 자기 팔자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뭐. 내 알 바냐.'


그간 쌓였던 억하심정을 담아 메-롱에 가운데 손가락을 먹여준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애시당초 이 주도면밀한 또라이가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할 리가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휘영은 만약 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면 마음껏 비웃어준 다음에 모르쇠로 일관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마음 먹는다.


"아, 아녜요. 그러면 그… 아까 말씀하셨던 보안이 필요한 내용을 이젠 이야기해주실 수 있다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죠. 어차피 이제 한 배를 타게 되신 거니까요. 다만 한 가지 양해를 구하자면…"

"양해?"


또 뭐야. 다 얘기해주겠다더니 벌써 빠져나갈 밑밥을 까는 건가?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오른다. 말투부터가 진부한 것이 전형적인 냄새가 팍팍 난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동선이나 행동지침 같은 것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시간을 내 전달해야 할 것 같네요."

"아… 그렇겠네요. 하긴 저도 원래는 오늘 바로 결론을 낼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시죠. 너무 구체적인 것만 아니라면 오늘 이 자리에서도 충분히 대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행히 빠져나가려는 밑밥은 아니었나 보다. 어차피 휘영의 1차적인 목표는 한 놈. 그 돌연변이라 불리는 존재를 '잡는' 것이다. 그 와중에 수행해야 할 미션이라든가, 실수를 가장해 죽여달라고 한 이야기 같은 건 굳이 지금 반복해 심기를 어지럽힐 필요가 없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의 과정이 아닌 결과. 그 중에서도 ‘이유’다. 평범한 사건으로 치자면 범행동기인 셈. 왜 그리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쳐야 했는지, 만약 그게 정말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거라면 대체 자신에게는 무슨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건지. 그런 내용들을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놈의 입으로 직접. 그게 제일 확실할 테니까.


그렇다면 신현우, 이 종잡을 수 없는 또라이에게 캐내야 할 정보는? 그가 말했던 '방법의 문제'가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좋아요. 먼저 아까 전에 ‘방법의 문제’라고 했던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요."

"음… 그 대답을 대신할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도록 하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야기라고요…? 좋아요, 해보세요."

"경위님께 어떤 제보가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세요. 수배 중인 강력범죄 용의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에 대한 제보입니다. 은둔생활의 패턴이라든가 도주 예상로 같은 것까지 다 제보했다고 칩시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노파심에서 덧붙여 드리자면, 그 제보는 분명 사실입니다. 용의자 얼굴을 헷갈린 것도 아니에요. 다시 말하자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꾸밈이나 속임수 같은 건 전혀 없는, 진짜배기 제보입니다."


뭐지? 이상한 질문이다. 너무 뻔해서 함정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역시 정황은 너무 확실하다. 슬쩍 눈치를 살펴봤지만 별로 소득은 없었다.


"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당연히 출동해서 잡아야죠. 강력범죄 용의자라면 그에 걸맞는 병력과 장비 지원을 요청해야 할 거고요."

"그럼 이 시점에서… 그 제보자가 사실 용의자의 아버지라고 해보죠. 외진 곳에 숨어 혼자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아들이 죄를 짓고 도망쳐 온 겁니다."

"……"


휘영은 덤덤하다.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했지만, 그녀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실제로도 종종 있는 케이스이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현우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자, 부모로서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굳은 마음을 먹고 제보를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어쨌거나 자식입니다. 차가운 감방에 아들을 보내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서 잽싸게 집으로 돌아가 잠들어 있던 아들을 깨웁니다. 도주로를 알려주고 서둘러 가라고 등을 떠밉니다. 아들의 원망을 듣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죠.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겁니다."

"…지금 장난하시는 거예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제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건가요?"


급기야 기분이 상한다. 질문이 어려웠나? 휘영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전혀 아니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이 모양이다. 언어세계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은 주욱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혹시 한글 표기를 쓰는 다른 언어가 있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현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휘영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서둘러 도망치긴 했지만, 예상 도주로까지 제보한 데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됐죠. 이미 쉽게 도망칠 수 있는 길에는 경찰이 배치됐습니다. 난감해진 범인은 근처 숲 속에 몸을 숨긴 채 동태를 살핍니다."

"이봐요, 정말…"

"그 와중에 딱! '그녀'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로서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얼굴이죠. 결국 범인은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


갑자기 톤이 높아진 현우의 목소리. 특히 '그녀'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강조한다. 그 대목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디가 어떻게? 휘영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그녀라는 단어, 혹시 자신을 지칭하는 걸까? 뭐야 이거, 혹시 요즘 유행하는 신종 수수께끼 같은 건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를…… 무슨 뜻이에요, 그거?"

"이런… 제 이야기가 너무 어려웠나요? 제대로 풀면 밤새도록 이어갈 수도 있는 스토리를 최대한 간추려서 들려드린 건데. 이 이야기 안에 조금 전에 질문하신 내용의 요점이 들어있습니다. 역시 엑기스만 간추려서 떠먹여드려야 하는 겁니까? 추리라는 걸 좀 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

"이런, 아무래도 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대해보신 적이 많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적응기간이라는 것도 필요할 테니 이번엔 답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이야기에서 말한 '그녀'는 바로 은 경위님, 당신입니다."


휘영은 왈칵 짜증이 난다. 그게 뭐? 그나마 어렴풋이 예상해보고 있던 부분을 무슨 명쾌한 해답이나 되는 것마냥 내뱉다니. 고작 그 한 마디만 하고서 '이제 알겠지?'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얼굴이 더더욱 짜증난다.


"……와아~ 하고 박수 쳐 드리면 되는 건가요?"

"이해가 안 돼요? 이게? 하아~ 밥상 차리고 숟가락까지 올려드렸는데 진짜 떠먹여드리기까지 해야 합니까. 좋습니다. 기왕 답을 알려드리기로 했으니 해설까지 완벽하게 해드리도록 하죠."

"음… 이미 한 번 겪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제가 욱하는 성질이 좀 있거든요. 험한 소리를 또 한 번 듣고 싶은 게 아니시라면 조금만 더 친절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랬었죠, 참. 그럼 압축한 줄거리도 한 번 더 꾹꾹 눌러서 딱! 정답만 내놓도록 하죠.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그 돌연변이는 은 경위님, 당신을 절대 피해갈 리가 없습니다. 병력 열 명을 배치하든 백 명을 배치하든 상관 없어요. 오직 당신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놈은 반드시 현장을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장담하죠."

"……"


뭐라도 답을 해야 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대신, 휘영의 머릿 속에는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섬뜩하게만 느껴지던 목소리와 '오래 찾아다녔다'는 그 말. 그렇다면 그녀의 역할은……


"……미끼……"


생각만 해도 기분이 확 더러워지는 상황. 그것을 단 한 마디로 정리하는 단어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것조차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현우는 당황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음…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보험' 정도로 생각하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매한가지입니다만, 기왕이면 미끼보다는 보험이 더 낫지 않겠어요?"

"……"

"저번에도 얼핏 말씀 드렸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이 문제는 제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번거로운 작당모의까지는 필요치 않죠. 하지만… 언제나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현우는 휘영에게 건넸던 파일을 가리키며 설명을 계속한다.


"전달해드린 자료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저희가 종적을 놓치고 있던 사이에 이 돌연변이는 엄청난 수준의 성장을 거듭해버렸어요. 날쌔고, 교활한 데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능력을 진화시켰죠. 지금까지 파악한 내용에 거짓은 없습니다만, 그게 전부일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변수 자체를 확정할 수 없는 게 변수라고 할까요.


또, 저희 쪽에서 놈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것만큼, 놈 역시 저희의 동향을 알고 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일이 틀어져서 놈이 도망쳐 다시 숨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그땐 여러 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 되죠. 저는 일을 할 때 불안요소를 남겨두는 걸 싫어합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모시고 있는 보스의 분노를 감당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


휘영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지만, 현우의 말은 계속된다.


"그래서 확실하게 놈의 발을 묶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은 경위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본의 아니게 위치를 추적하고 밤 늦게 불쑥 찾아가 심기를 건드린 것도 결국 그런 맥락인 거죠. 조금 전 제가 들려드린 가상의 이야기는… 오늘 이후 팀 내에서 작전을 세울 때 참고하시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대로 하시라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만, 제가 내걸었던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아무래도 최대한 비슷하게 준비하시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네요."


침묵이 흐른다. 휘영은 급격히 더러워진 기분을 달래려 연신 차를 들이킨다.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는 데에도 실패했고, 흐름도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이대로라면 일단 제안을 수락한 뒤에 절충안을 찾아보려던 처음 계획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봐야한다.


이 싸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까. 앞에 앉은 완벽주의 또라이는 애초에 분위기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건 말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 자세, 말투. 그 무덤덤함에 오히려 휘영의 혼란은 가중된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꼬여만가는 생각다발 사이에서 그녀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정리할 질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그 돌연변이의 타겟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해서 작전을 세워보라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파일로 넘겨드렸던 내용만으로도 놈을 처리할 확률이 꽤 높은 건 사실이지만… 놈이 은 경위님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정보를 더하면 100%, 완벽한 '사냥'이 될 겁니다."

"…표현이 참… 거슬릴 정도로 직설적이시군요. 제가 아는 어떤 분과 많이 닮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네요."

"그렇습니까?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늘 흥미로운 법이죠. 이번 일이 잘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 번 소개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음… 여건이 된다면요."


일단 대답은 했지만 지홍과 현우를 소개할 마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두 사람이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눈치를 봐서는 서로 우호적일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그런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 둘을 붙여놨을 때 벌어질 참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럼 오늘 용건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군요.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뇨, 오늘은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보시다시피 지금 심적인 충격을 좀 받은 상태라."

"좋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차라도 한 잔 더 하시면서 쉬다 가시죠. 계산은 제가 해놓고 가겠습니다."

"아, 저기……!"


겉옷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현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춘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질문 하는 게 별 의미가 없긴 한데요."

"……?"

"아니 뭐…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근원계에서는 계약의 표식을 남긴다던가… 그런 건 필요 없는 건가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하겠다고 해놓고 상황이 바뀌어서 곤란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나중에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아아, 물론 제가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근원계의 시스템적인 부분이 궁금하다고나 할까요."


횡설수설하는 휘영의 말에 현우는 피식 웃는다. 오늘 마주한 뒤로 본 표정 중 가장 허심탄회하고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다.


"시스템적인 부분이라면 간단합니다. 그냥 상황에 따라 다른 거죠. 필요에 따라서는 이쪽에서도 계약서 같은 고리타분한 방식을 쓸 때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이죠."

"아……"

"그리고 뭐, 계약의 표식…이라고 하셨던가요? 무슨 사극에서처럼 인두로 지져서 표식이라도 남길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아니면 게임 같은 데서 나오는 마법 문신 같은 거?"

"…깐족거리는 건 적당히 좀 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러죠. 아무튼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일에 불안요소를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별다른 장치를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건 제 행동에 그만한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뭐,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이 터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아직까지 그랬던 적은 없네요. 은 경위님에 대해서는 한 번 뱉은 말을 번복할 타입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으니 복잡한 절차를 생략한 겁니다."

"오늘 하신 말씀 중에 제일 듣기 좋은 말 같네요. 자꾸 휘둘리는 기분이 드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툴툴거리는 휘영의 말에 현우는 다시 한 번 피식 웃는다.


"흠… 만약, 정말 만약에라도 마음이 바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 같다. 뭐 그런 후회가 드실 수도 있겠죠? 어쨌거나 사람이니까. 그렇게 되면 딱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두 가지…요?"

"첫째, 저희에겐 은휘영 씨가 있는 곳을 찾아낼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당신을 제압할 수 있는 충분한 힘도 가지고 있죠.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부연설명 없어도 이해하시겠죠?"

"……네, 그렇네요. 친절하고도 훌륭한 협박, 정말 감사합니다."

"협박이라뇨. 그런 건 유.의.사.항.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한."

"……아까부터 몇 번이나 진심으로 묻고 싶었던 건데요."

"네?"

"한국말 잘 모르죠?”

"……"




이것저것 병행하는 작업이 많다보니 스토리 진행이 더딥니다. 1회 연재 분량을 워드문서 10~11페이지 정도로 작성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는 편이고요. 카카오페이지에서 즐겨보는 웹소설 중 주 3회를 연재하는 작품의 1회 분량이 그 정도 되길래 따라서 해보는 중인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

이번 화부터는 초반에 스토리 흐름을 기획할 때 미처 생각해두지 못한 장면들이 상당수 들어가 있습니다. 쓰면서도 다소 전개가 루즈하다는 느낌도 있었고, 필력이 떨어진다는 자책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번 작품은 도중에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모든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구독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전체 연재작은 매거진 : 어느 판타지 이야기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재소설] 저 너머의 하늘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