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언제 적힌 지 알 수 없는 이 사랑 고백을 메모장에서 발견했다.
"86. 엄마 사랑해"
숱한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시청으로 다져진, 발음만 아는 일본어들을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고, 누구나 그걸 왜 하나 하지만 내가 궁금해서 쓰기 시작한 메모를 어느새 85번까지 써 내려갔다. 중간중간 잼에게 엄마 지금 몇 번까지 썼다고, 일본어 공부라곤 방학 특강으로 한 달 들은 게 끝인데 이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니냐고 자랑을 겸한 보고를 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엄마 85번까지 썼다! 대단하지!" 이제 질릴 만도 한데 적당히 리액션해 주더니 언제 이런 건 적어놓은 걸까. 엄마 눈물콧물 쏟아내게 하려고 아주 작정했지.
우습게도 메모장에서 저 아주 간결하게 심장을 후드려 패는 말을 발견했을 때 마냥 감동만 받은 건 아니었다. 사랑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받는다고, 잼의 사랑에 나는 두려워졌다. 이 사랑이 지속되기를 내가 얼마나 갈망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실은 사랑을 받는 일이라는 걸 오늘도 실감했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에게도, 남자에게도, 친구에게도. 존재만으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열 살 조금 넘은 딸에게 십 년째 배우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엄마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겠지. 이런, 이 사랑이 시한부라니.
이 사랑이 변할까 두려워하는 건 연애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드라마로 배웠던 감정을 잼 때문에 알게 되다니. 사랑하는 상대가 나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어서 실망하고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캐릭터, 이거 어느 채널에서 하는 드라마냐.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도 갑자기 슬퍼져 마침 전화를 걸어온 큰오빠에게 투덜투덜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오빠가 그런다.
"너랑 엄마는 완전 달라. 그냥 다른 게 아니라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잠깐 그럴 수 있어도 다시 돌아올 거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엄마를 새롭게,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냥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미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성격과 습성을 몇 마디로 파악 완료를 끝낸 것과 달리 엄마는 그냥 내게 엄마였다. 사랑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엄마, 보호하고, 보호해야만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다시 바라보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 이후 엄마는 내게 가장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지금 잼을 대하고 키우는 방식이 나와 엄마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나저나 나는 왜 이런 고민들에 필요한 답변을 남편이 아닌 큰오빠에게 듣는 걸까.)
큰오빠와 잼에 대해 좀 더 수다를 떨고 나서 전화를 끊고 방에서 혼자 잘 놀고 있는 잼을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왜?"
품에 쏙 안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 익숙하게 뺨을 대주며 잼이 물었다. 잼의 뺨에 뽀뽀를 퍼부으며 큰삼촌과의 수다를 보고했다. 물론 내 고민 이야기는 쏙 빼고.
"큰삼촌이 너는 왜 그렇게 사랑이 넘치냐고 하던데?"
"당연히 사랑이 넘치지."
"왜? 그게 왜 당연?"
그걸 왜 모르냐는 듯 고개를 돌려 내 입술에 쪽 뽀뽀를 해주며 잼이 말한다.
"엄마한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 녀석, 하루에 두 번씩이나 엄마 눈물콧물 흘리게 하려고 작정했지. 그렇다면 받아라, 엄마의 넘치는 사랑. 잼의 온 얼굴에 뽀뽀를 해대며 나도 고백한다.
"잼아, 사랑해."
잼 : 하루에도 열두 번 '쑤우~~'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초등 중학년과 고학년 사이 어드매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