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첫눈이 내립니다. 아니 내리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솟아나는 것 같아요.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는 작은 눈송이 들은 마치 하나하나 살아서 유영하는 알맹이들 같지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첫눈이에요. 계획했던 데로 카푸치노 거품을 머금고 눈을 지긋이 바라보지요. 그러고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도 없이 말이지요. 굳이 이유를 찾자 하면 세상에 하얗게 펼쳐지는 장관 때문이지요. 불꽃놀이는 시시할 정도입니다. 잘 보이는 자리를 찾겠다고 사람들 사이에 끼일 필요도 없고, 비싼 자리를 미리 차지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리는 눈이지요.
눈이 그치자 눈 소리를 들으러 가지요. 눈길을 걸을 때마다 뽀사삭 뽀사삭 지저귀는 소리를 좋아하거든요. 뒤뚱뒤뚱 거리며 걷습니다. 펭귄이 왜 뒤뚱뒤뚱 걷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뒤뚱 거리니 기분도 뒤뚱거려 좋아지지요. 이번에 내린 눈은 밀가루처럼 맑고 하얗네요. 백설기를 빚어도 좋을 만큼 질이 좋은 최상품 눈입니다. 눈치 없다고 타박했던 바람이 대기를 깨끗이 청소해 놓았나 봅니다. 이번에는 칭찬해.
그런데 눈은 언제부터 이렇게 하얗고 아름다왔을까요? 무슨 수를 썼길래 이토록 새하얗게 세상을 물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눈도 처음에는 칠흑처럼 검었다고 하네요. 나이가 들어 그렇게 새하얗게 백설이 된 거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눈은 나이가 엄청 많은가 봅니다. 사람 나이로 하면 백 살은 족히 넘고도 남은 듯해요. 아니 백곱하기백 백백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한치의 검은 새치도 없이 완벽한 새하얌을 유지할 수 있나 보네요. 그렇게 나이가 아주아주 많아서 차가움 속에서도 지혜로이 따스하게 그 넓은 세상을 단번에 품을 수 있는 것이라네요. 소싯적에는 눈도 비나 바람이나 폭풍처럼 젊은 혈기에 한 성질 했을 겁니다. 검은 눈을 뿌리던 시절 말이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알고 품게 된 이제, 세상을 온통 덥을 수도 그러다 홀연히 녹을 줄도 아는 깨닫음을 얻은 것이지요.
머리에 한 올 한 올 흰머리가 늘어갈 때면 그렇게 눈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가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