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명절에 식사 한 끼 하고 과일 먹으면서 조금 떠들다가 헤어진다.
대부분 아버지의 삼 형제, 세 가족이 모이는데 모두 광명시에 산다.(아파트는 다 다른데 각자의 집이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아침 9시 반쯤 모인 뒤, 점심이 되기 전에 각자 집에 가서 쉬거나 놀러 간다.
제사도 안 하고, (본 적도 없다) 설에는 세배와 용돈이 추가되기만 할 뿐. 아주 즐겁고 쿨한 모임이다.
친척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와중에, 작은 할머니가 사촌오빠에게 넌지시 물었다.
"00 이는 지금 뭐하니~?"
서른이 된 장손에겐 어쩔 수 없는 직업 질문인가 싶어 다들 약간의 정적을 느꼈다.
그런데 옆에서 식사하시던 작은할아버지께서
"00이 지금 밥 먹어~! 보니까 키위 샐러드 먹는 중이네~!"하고 아주 빠르게 되받아치셨다.
모든 가족들이 집안이 약간 흔들릴 정도로 웃었다.
저게 연륜인가. 엄청난 세월이 담긴 위트다...
사촌오빠는 얼굴에 가벼운 안도감을 비친 후 작은 할머니께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말씀드렸다.
작은할아버지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작은할아버지는 우리가 뭘 하는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얼마를 버는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셨다.
본인은 고려대학교+은행장 출신이시면서 자손들에겐 아무런 압박을 하지 않으신다. 익히 들어왔지만 아버지의 대학 학비를 선뜻 내주셨던 것 또한 미담이다.
그저 볼 때마다 쑥쑥 큰 사촌들이 궁금하신지 우리의 나이 정도...? 또는 왜 다들 이렇게 미남미녀냐고 하시면서 유쾌한 멘트를 하셨다.
약 15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해마다 명절 때면 자녀들이 다 미국에서 사는 작은할아버지 내외분을 계속 초대한다.
나도 작은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