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캄페체에서의 하루하루가 익숙해질 무렵,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과달루페(Guadalupe) 동네에 있는 유치원학교 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긴 머리에 롱스커트를 차려입은, 세련되고 젊어 보이는 한 학부모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어요? 김치는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아세요?"
그녀의 이름은 카렌(Karen)이었다. 나는 서툰 스페인어로나마 반갑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김치 아시는군요! 저는 메리다에 갈 때 사 오거나, 가끔 한국 분이 멕시코시티에서 가져다주시기도 해요."
그 후로도 한국 요리에 관심이 많은 듯한 카렌과 몇 번 더 마주쳤고, 작은아이의 수영 학원에서도 우연히 얼굴을 보게 되었다. 마침 나는 얼마 전 메리다 아시안 마트에서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하지만 그것이 배추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배추 몇 포기를 발견해 몽땅 사 온 터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로 오랜만에 김치를 담가 디나에게도 나눠주고, 카렌에게도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스머커(Smucker's) 잼 병에 김치를 담고, 포스트잇에는 서툰 스페인어로 들어간 재료(배추, 고춧가루, 마늘, 젓갈 등)를 적어 수영 학원에서 그녀에게 건넸다.
카렌은 정말 진심으로 기뻐하며 내 두 손을 잡았다. "정말 고마워요! You made my day!" 그녀의 환한 미소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뒤, 카렌은 감사의 의미로 59번가(Calle 59)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함께 브런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큰 부담 없이 그녀가 미리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으로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오랜만에 하는 낯선 이와의 식사 자리였지만, 카렌은 디나와는 또 다른 편안함을 주었다. 그녀의 스페인어는 빠르지 않았고, 마치 아이에게 이야기하듯 쉽고 천천히 말을 풀어내서 내가 알아듣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음식이 나왔을 때, 갑자기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제가 식사 전에 기도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멕시코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개신교식으로 식사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사실 나 역시 ‘가출한 기독교인’(하나님을 믿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도,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리지도 않는 상태)이었기에 기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카렌은 내 손을 가만히 잡고는, 차분하고 평범한 식사 기도를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어준 요리사와 음식을 가져다준 웨이터에게 하나하나 감사를 표현하고, 오늘 우리가 함께 식사하는 이 귀한 시간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기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이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왜 울었는지, 그때는 나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무렵 남편과의 관계로 인해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디나는 남편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였기에, 나는 차마 디나에게 남편과의 힘든 관계나 내 속마음을 깊이 털어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남편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는게 우리 셋 모두의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갑자기 어렸을 적 식사 때마다 내 손을 잡고 기도해 주시던 엄마 생각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쩌면 매번 감사하고 있지 않았던 내 삶을 다시 돌아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인지 명확히 정의 내릴 수는 없었지만, 나는 카렌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그냥 그렇게 한참을 같이 울어버렸다.
내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 카렌도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다 안다는 듯 내 손을 더 꼭 잡아주었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눈물이 그치고 난 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의외로 평범했다.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과 눈물 속에서, 우리는 이미 어떤 깊은 교감을 나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카렌은 나에게 감정적으로, 그리고 어쩌면 종교적으로도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그녀와 내가 만나면 항상 울면서 시작하고 울면서 끝나는 남들이 보면 약간은 미친듯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부끄럽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판단 없이 들어주었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때로는 잔잔한 지혜를 건네주었다.
캄페체에서의 내 삶에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