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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담해안 일몰 보러가는 길

저마다의 애월

by 조은영 GoodSpirit

여행 이튿날, 그러니까 오늘 여행의 대미는(오로지 주관적인 기준에서) 한담해안 산책로에서 보는 일몰이다! 희한하다. 일상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챙겨보려 하지 않는데 꼭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해돋이와 해넘이를 봐야 할 것 같다. 오늘의 해넘이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혹시나 애월해안길로 걷다가 중간에 길이 끊기거나 잘못 들까 싶어 대로변 보행자로로 걸었다. 한담해안 가까이 오니, 애월읍에서 20분쯤 걸어온 것 같은데 여기는 완전 딴 세상이다. 대로변을 중심으로 대형 카페와 식당, 기념품가게 등이 즐비하고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하다.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들이라 길을 걷다 들리는 중국어들은 마치 내가 중국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새로운 길을 익힐 겸 한담해안 산책로로 내려갔다. 산책로 초입에서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산책로로 들어서 조금 걷다 보니 비교적 한산해졌다. 걷는 여행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직 해넘이를 보기에는 이른 시간이라서 해안 산책로를 따라 쭉 걷는다. 날씨는 여전히 좋다. 하늘 높이에는 목화솜을 속이 비치도록 얇게 펴놓은 것 같은 가벼운 구름이 홑이불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 목화솜을 뚝뚝 떼어 던져놓은 것처럼 묵직하게 내려앉은 구름들이 여러 층고를 이루고 있다. 산책로 아래에는 모래사장 대신 커다란 검은 돌덩이들이 길고 넓게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에는 돌이 참 어디에든 많다. 저 드넓은 바다 아래에도 끝도 없는 돌들이 있겠지. 그 돌들이 있어서 제주는 더 제주스럽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용암이 분출했을 당시의 형태가 상상이 되는 기암괴석도 있다
아, 이 돌을 마주쳤을 때, 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 <돌덩이>라는 시가 나에게 찾아왔다.

<돌덩이>


저기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다


사지가 잘려나가고

몸통만 남은 채로


그럼에도 뜨거운 심장을

어쩌지 못하고


돌덩이가 되어

누워 있다


깊이 파인 흉터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


흉터가 아프다면

치유된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흉터라도


이젠 괜찮다고 느껴질 때

고통이 올라오지 않을 때


비로소 치유된 것이다


아직 고통받는

저 사람의 옆에


나란히 누워서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한담해안길은 곽지 잠녀의 길로 이어진다. 잠녀는, 곧 해녀를 일컫는 말이다.
해안길은 그저 길만 뻥 뚫려있는 게 아니라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의 열린 문처럼 보이는 커다란 자연석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마치 전망대에 올라선 것처럼 바다를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저기 곽지해변이 보인다.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곽지해변에서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도 보인다. 내 버킷리스트에 서핑이 추가되는 순간이다.
반려견과 교감을 나누는 사람,
노을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나도 있다. 모두들 저마다의 애월을 몸과 마음에 담는다.
해넘이와
노을에 채색된 구름
해안길을 둘러선 카페들, 그리고 저 모퉁이, 누군가의 손을 뒤로 하고 집을 향해 걷는다.
중간에 어두워져 애월읍 도로변으로 나왔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 <육회한 애월> 앞
성게미역국

<육회한 애월>에서 유쾌한 하루를 마치는 나의 소울푸드 미역국을 먹는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몸조리를 도와준 엄마가 한달을 끓여주어도 질리지 않았던 바지락미역국, 황태미역국, 굴미역국, 소고기미역국, 감자미역국, 들깨미역국. 그 미역국들을 떠올리며 제주도에서만 먹게 되는 성게미역국을 먹는다. 이만하면 참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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