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뚜벅이의 끄적끄적

by 달바다

책임이라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그 이유는 나 조차도 나를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려운데 타인 또는 반려 동물을 책임진다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반려 동물을 키우거나 결혼도 신중하게 여기며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키우거나 결혼을 한다면 그 이후는 파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을 때, 누군가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 살았다. 반려견의 종류는 진돗개였고 아마 아버지의 외가를 통해 키우게 되었을 거라고 추측은 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외가는 제주도라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키우게 되었었다.'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진돗개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진돗개 또한 영리한 품종이기 때문에 나를 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그때의 반려견에 대한 기억은 한 두세 가지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참 그들을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첫 번째는 첫 진돗개의 이름은 아기공룡 둘리에서 따온 '둘리'라는 이름이었고 암컷이었다. 둘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다는 기억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헤어질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둘리가 임신을 하고 아기 진돗개를 많이 출산을 하고 다 키울 수 없으니 '아기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고 나머지를 분양 하자.'라고 부모님이 상의를 하셨던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때의 기억이 제일 먼저 남았냐면 그때 반려견과의 첫 이별이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좋은 사람들에게 입양이 갔지만, 그때 내 나이 4~5살로 기억하기 때문에 둘리와 못 본다는 마음이 너무나도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의 이별인 둘리의 새끼인 '누렁이'와 '커피'의 이별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 게 '뚜비'였다. 뚜비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인이 되고도 한 5~6년을 더 살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토이 푸들이다.

그러니 총 약 17년? 18년? 사이를 살다 갔다. 그러면서 나는 새롭게 반려견을 책임을 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책임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책임은 그냥 "아, 내가 책임을 질게."라고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책임이라는 것은 그 상황과 더불어 그에 대한 자신의 행동 등을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책임을 가볍게 말해서도 안 되는 거다. 그걸 알게 되는 건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것을 외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뚜비가 치매며 우울증이며 그런 것과 거리가 멀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뚜비를 내버려 두고 방황을 하던 사이에 뚜비는 집에 안 들어오는 나를 기다리며 수시로 닫혀 있는 내 방문을 긁으며 내가 있나 확인을 했다고 부모님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마 나의 부재가 뚜비의 치매를 더 부추기지 않았나 가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 기다림과 마음의 충격이 뚜비와의 이별을 한 발자국 더 이끈 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어머니도 외갓집으로 잠시 내려가 있었기도 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치매에 걸린 뚜비를 돌봐주며 이것저것을 케어를 해줘야 했다. 우리 가족은 그때의 뚜비를 외면이 아닌 책임을 지기로 했고 뚜비는 이미 우리 가족의 하나의 구성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뚜비에게 안 좋은 상상은 하기 싫지만 피부병을 자주 앓았던 뚜비로서는 거리에 버려졌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다 치매까지 앓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던 뚜비로서는 가족들의 외면이 냉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인간들도 치매 걸린 부모들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보내 버리는 걸 보면 사람의 이기적인 면은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보면 끝까지 뚜비를 책임을 지었던 우리 가족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한때 뚜비를 외면했던 나 자신을 이만 용서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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