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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Mar 22. 2024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달러랑 원화를 벌게 됐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면 되지

'캐나다 사람인데 미국에 취업해서 돈 버는 사람들이 되게 많대.'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으로 가서 돈 벌기 훨씬 수월하다더라.'


이런 말들을 많이 들어왔지만,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에 일했던 곳이 미국 회사지만 지사가 토론토에 있었기에 내 일은 아니라고 굳건히 믿어왔다. 근데 생각해 보면 미국 회사랑 인연이 깊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힘으로 처음 구했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도 미국 회사, 처음 받게 되었던 직업다운 직업도 미국 회사, 그리고 지금 또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것도 '개인사업자'로.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 달러를 다시 벌게 되다니. 그래, 나한테 주어진 게 이거라면 이런 거라도 해야지.


내가 일하기로 한 미국 회사는 지사나 본사가 캐나다에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캐나다 은행으로 입금을 하려면 내가 개인사업자 프리랜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금 신고도 내가 일 년에 한 번씩 모든 걸 다 입력해야 하고 고용 보험은 물론, 월차, 연차 개념도 없다. 그래서 일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실업급여가 5월까지니.. 이거라도 해야지 어쩌겠나 싶어서 또 덥석 받아들였다. 여기서 또 다시 정리해고가 되면, 그때는 고용 보험이 없기에 실업 급여도 없을텐데, 하는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중간에 계속 다른 회사 채용 공고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도 잘 쌓아놔야지, 하면서.


캐나다에서 미국의 돈을 받기 위해서는 캐나다 내에서 연방 정부의 '비즈니스 번호'를 받아야 했고,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 주에서 '비즈니스 라이선스'를 신청해야 했다. 이걸 신청하고 나면 미국의 국세청, IRS에 전화해서 EIN(고용 식별 번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화로 하기 싫어서 온라인으로 하려고 했지만, 전화로 하는 게 훨씬 빠를 거라고 해서 내 인생에서 미국 국세청이랑 통화하는 특이한 경험도 해봤다.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EIN을 받고 기진맥진 해, 30분은 누워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시 미국 달러를 벌게 됐다. 온타리오 주의 시급 1.7배로 시작하지만 일주일에 받는 시간은 고작 20시간이다. 3개월 수습기간을 주고 시간을 더 늘려주겠다고 했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 실업 급여는 당연히 이제 못 받을 게 뻔한데, 누가 봐도 주 20시간은 부족하다. 월세 내고, 밥 먹는 돈이면 끝이다. 그래서 내가 다음 방안으로 찾아냈던 것이 한국에서 화상 영어 티칭을 하는 거였고, 당장 알바몬에 들어가서 한 달에 50만 원이라도 더 벌어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기회로 만들자, 싶어서 4군데에 지원했다(사실 내가 영어 공부하고자 하는 욕심도 가득했다).


놀랍게도 4군데 모두 연락이 왔고,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2군데와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중 한 곳과 계약을 하고 원화까지 벌게 되었다. 시차가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마음이 잘 닿았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5시간 일을 하고 나면 2~3시에는 내 일이 끝나니 그 후의 시간은 어떻게 더 잘 쓰면 좋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아마 내가 아직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블로그를 하고 영어 수업 준비도 해야겠지만, 운동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100% 재택은.. 살이 찌기 마련이니까.


100% 마음에 드는 직업이 아니라 '실패'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회사가 아니었고, 내가 싫어했던 전 상사의 오퍼였기에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실패가 '끝'이 아님을, 실패가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나의 이런 '실패'가 있기에 화상 영어 티칭을 생각해 낼 수 있었고, 프리랜서 플랫폼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한 회사랑 또 이야기 중이다), '개인사업자'가 되었다. 싫었던 상사와의 끝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나왔던 덕분에 그녀에게서 오퍼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은 마무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배웠다.


나는 실패했지만, 또 다른 시작도 한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듯이 이제 내 삶도 조금 더 따뜻해지려나. 이번 겨울, 진짜 지독히도 추웠다.

책상 위치를 바꿨다. 나만의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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