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투니아 이모와 다람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내로남불 이사, 그녀를 길들이다

by 머니페니

김다람은 이제 '회사 지옥'의 모든 빌런들을 프로파일링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염라대왕, 스피커, 독재자… 이제 그녀의 레이더에 포착된 새로운 빌런은 바로 '페투니아 이모' 같은 최진숙 이사였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해리포터를 못살게 굴던 그 이모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최진숙 이사는 사사건건 간섭이 심했고, 심지어 사내 비품 하나하나에도 트집을 잡아 못 쓰게 했다. 연필 한 자루, 포스트잇 한 장에도


"이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라는 핀잔이 따라붙었다. 더 심각한 건, 영업부에서 외부 접대차 공용카드를 쓸 일이 생기면


"그걸 굳이 써야 하느냐"


며 자기 돈도 아닌데 늘 닦달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 돈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도 직원들이 그냥 사비로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업무가 바빠 택시라도 타면


"왜 택시 탔어? 네가 일찍 일찍 다녀야지!"


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뭐든지 후했다. 회사에서 임원들에게 지원해 주는 '문화의 날' 회식비는 팀원들을 챙기는 대신, 사적인 용도로 친한 몇몇과만 식사를 하는 데 쓰고는 버젓이 경비 처리했다. 다람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저 이사는 자기가 필요로 하지 않는 비품에는 인심이 박하고, 본인은 덜 쓰는데 남이 많이 쓰는 기준에는 배가 아픈 거지.'


이를테면, 원두커피는 본인이 마시니 늘 재고를 넉넉히 채워 두지만, 본인은 좋아하지 않는 믹스커피는 캐비닛 깊숙이 감춰 두는 식이었다. 외근 교통비도 늘 태클을 거니, 직원들은 피곤해서 그냥 개인 돈으로 해결하는 셈이었다. 다들 아쉬운 소리 하기도 그렇고, 싫은 소리도 듣기 싫은 거였다. 그런데 최진숙 이사는 아마 오늘도 이렇게 아낀 돈으로 회사 살림을 잘 꾸려 나갔다고 뿌듯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람은 한숨이 나왔다.


'정말 알면 알수록 피곤한 사람이다. 늘 겪어야 하는데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다람은 고민에 빠졌다.


김다람 부장의 '절약 빌런' 길들이기

김다람은 이제 어엿한 부장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페투니아 이모' 같은 최진숙 이사 밑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옥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어느 날 아침 회의. 최진숙 이사는 눈에 불을 켜고 사내 비품 관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아니, 종이컵이 왜 이렇게 빨리 닳아요? 다들 집에 가져가서 쓰는 것도 아니고! 이건 분명 관리의 문제입니다! 제가 볼 때는 비품 낭비가 너무 심해요!"


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고개를 숙였다. 다람은 이때다 싶었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손을 들었다.


"이사님! 제가 종이컵 절약에 대한 기가 막힌 '인사이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최진숙 이사의 눈이 번뜩였다.


'절약'


이라는 단어에 그녀의 귀가 쫑긋 섰다.


"오호? 김다람 부장이 뭔가 아이디어가 있단 말이지? 말해봐!"

"네, 이사님!"


다람은 마치 위대한 발명품을 발표하듯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저희가 현재 종이컵을 탕비실에 외부에 비치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관리 소홀로 불필요한 낭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종이컵을 캐비닛 깊숙이 감춰두고, 필요할 때마다 담당 직원이 하나하나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종이컵 사용에 한 번 더 신중하게 되고, 이사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절약 정신'도 고취될 것입니다!"


회의실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다른 팀원들은 다람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최진숙 이사는 눈을 반짝이며 다람을 바라봤다.


"오오! 김다람 부장! 너, 정말 기특한 생각을 했어!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해야 직원들도 아껴 쓰는 습관이 들지!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야! 당장 시행해!"


최진숙 이사는 종이컵 절약 비법을 전수받은 듯 매우 기뻐했다. 그날 이후, 회사의 모든 종이컵은 탕비실 캐비닛에 '봉인'되었다. 그리고 종이컵을 꺼내주는 담당 직원이 생겼다.

직원들은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최진숙 이사는 매일 아침 종이컵 재고를 확인하며 뿌듯해했다.


며칠 뒤, 다람은 영업부에서 공용카드 사용 문제로 최진숙 이사에게 닦달당하는 후배를 발견했다. 후배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 이 과장! 택시를 탔으면 영수증이라도 제대로 챙겨야지! 그리고 왜 이렇게 택시를 자주 타? 일찍일찍 다니면 될 거 아니야! 회사 돈이 땅 파면 나오는 줄 알아?!"


이정원 과장이 다람에게 보냈던 '반말' 메신저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짜증이었다. 다람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이사에게 대들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게 뻔했다.

다람은 조용히 최진숙 이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님, 제가 이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진숙 이사는 다람의 비장한 표정에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일인가, 김 부장?"

"이사님께서 평소 강조하시는 '알뜰한 경비 사용'과 '회사를 위한 절약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도 영업부 직원들이 외근 시 택시를 타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다람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다음 달부터 영업부 직원들에게 '대중교통 이용 장려금'을 지급하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한 달간 대중교통만 이용한 직원에게는 소정의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볼 때, 택시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직원들도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더 커질 겁니다. 이사님의 평소 경영 철학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진숙 이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절약'과 '인센티브'라는 달콤한 단어가 동시에 들리자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듯했다. 게다가 '이사님의 경영 철학에 부합한다'는 칭찬까지 덧붙여지니,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다.


"음… 대중교통… 장려금…?"


최진숙 이사는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남이 많이 쓰는 것에 배가 아팠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회사가 '절약'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에는 매우 후한 사람이었다.


결국 최진숙 이사는 다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대중교통 이용 장려금' 제도가 시행되었고, 직원들은 억지로 택시비를 개인 돈으로 내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소정의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이사는 문화의 날 회식비로 친한 사람들과만 식사를 했지만, 최소한 직원들에게는 '절약'을 빌미로 한 잔소리는 줄어들었다.


김다람은 오늘도 슬기로운 회사 생활을 해냈다. 그녀는 페투니아 이모 같은 상사를 '쪼잔하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그들이 기뻐할 만한 '인사이트'를 제공했다. '칭찬 존경 예우는 타의에 의해서 이행되어야 그 멋 이 있는 법'이라는 원칙을, 빌런을 길들이는 데 사용한 것이다.


회사 지옥은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김다람은 이제 모든 빌런들을 길들이는 '지옥 조련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 빌런은 또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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