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개조 전문가 김다람
김다람 이사는 이제 명실상부 '회사 지옥'의 지배자이자, 빌런들의 본성을 꿰뚫는 '인간 개조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혁명은 이제 새로운 단계, 즉 '무존재감 잉여인간'을 활용한 직원 복지 개선이라는 기상천외한 미션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타깃은 바로 그녀의 인사과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하마 이사였다.
하마 이사는 여전히 '칸트 이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8시 29분 칼출근을 자랑했다. 그의 오전은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쇼핑으로 시작되었고,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변비'와의 사투를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오후에는 모니터 가득 예쁜 원피스나 해외여행 상품이 뜨는 '쇼핑-서머타임'을 즐겼다. 그야말로 '일.도.안.하.는.' 존재였다.
물론 그가 일도 안 하고 노는 것에 영업부 직원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가끔 그의 존재 자체를 까먹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일한 불만이 있었으니, 바로 회사 직원 모두를 위해 구입한 '하이엔드-럭셔리 리조트 회원권'을 하마 이사 혼자, 그것도 자신과 친한 박 이사와만 번갈아 이용하다가 만료시켜 버린 것이었다. 직원들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구입한 복지를 구경조차 못 했고, 여행 가려면 사비로 '야놀자'를 뒤져야 했다.
어느 날, 김다람 이사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야. 이건 복지 도둑질이야!' 하지만 그녀는 이미 감정적인 대응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노련한 혁명가였다. 하마 이사는 페투니아 이모의 공개 저격에도 상처 하나 받지 않는 극강의 둔함을 자랑했기에, 직접 따져봐야 소용없었다.
다람은 곰곰이 생각했다. '하마 이사는 딱히 누구에게 해를 끼치려 하지는 않지만, 그의 무존재감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군. 그렇다면, 저 무존재감을 역이용해서 직원 복지를 되찾는 방법은 없을까?'
때마침 회사에서는 '직원 복지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리조트 이용에 대한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담당 부서는 하마 이사가 속한 경영지원부였다. 하지만 하마 이사는 그저 모니터에 떠 있는 예쁜 원피스에만 관심이 있었다.
다람은 조용히 하마 이사에게 다가갔다.
"이사님, 혹시 이번 복지 설문조사 결과 보셨습니까? 직원들이 리조트 이용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합니다."
하마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랬나? 나는 박 이사랑 잘 다녀왔는데."
"네, 이사님께서는 잘 이용하셨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단 한 번도 이용하지 못하고 회원권이 만료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사님께서 워낙 바쁘시다 보니, 직원들의 예약 요청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다람은 일부러 하마 이사의 '쇼핑과 똥 싸는 시간'을 '바쁘다'는 식으로 포장했다. 하마 이사는 자신의 '바쁨'을 인정받는 것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사님. 제가 이사님의 업무 부담을 덜어드리고, 동시에 직원들의 복지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하마 이사의 눈이 평소보다 약간 더 커졌다. 그는 '업무 부담을 덜어준다'는 말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사님께서는 워낙 중요한 분이시고, 회사를 위해 늘 고심하시지 않습니까? (뻥이다) 그래서 리조트 예약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리조트 관리 업무를 완전히 자동화하는 건 어떨까요?"
하마 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동화? 그게 가능한가?"
"네! 직원들이 직접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예약하고, 예약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겁니다! 이사님께서는 단 한 번의 승인 클릭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실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이 시스템을 통해 '리조트 이용 만족도 조사' 도 자동으로 진행하여, 직원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다음 회원권 갱신 시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이사님께서 '직원 복지에 가장 신경 쓰는 이사님'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실 겁니다!"
다람은 하마 이사의 '편안함 추구'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은근한 욕망' 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는 이제 리조트 관리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편하게 놀면서, 동시에 '복지왕'이라는 명예까지 얻을 수 있는 시나리오에 솔깃했다.
"오오! 김다람 이사! 자네, 정말 대단하군!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 역시 김다람 이사는 다르단 말이지!"
하마 이사는 자신이 이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인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곧장 박 이사를 시켜 시스템 구축 작업을 도와 달라했고, 박 이사는 하마 이사의 칼퇴를 위해 빛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새로운 리조트 회원권이 재구입되었고, 직원들은 직접 예약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직원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야놀자'를 뒤지지 않아도 되었다. 하마 이사는 가끔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하여 '리조트 예약 현황'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여전히 평소처럼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모니터로 쇼핑을 즐겼다.
다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마 이사는 여전히 일도 안 하고 놀았지만, 이제 그의 '무존재감'과 '게으름'은 오히려 회사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복지 도둑'이 아닌, '의도치 않은 복지 수호자'가 된 셈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하는 하마 이사는 11시에 또 화장실을 가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차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예쁜 여행 상품이 보였다. 아마도 다음 주에 그 리조트에 놀러 가겠지. 김다람은 하마 이사를 보며 생각했다.
'회사 지옥에서 가장 무서운 빌런은, 어쩌면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천하무적 김다람 이사의 모험은 계속된다. 다음번에는 어떤 빌런의 본성을 역이용하여 회사 지옥을 뒤흔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