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연이 큰 계기를, 큰 계기가 밝은 세상을 만들길 희망하며...
깨끗한 거리 한편에 놓인 깨진 유리창. 이 유리창을 귀찮다는 이유로, 별 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처참한 일이 벌어집니다. 범죄 발생률이 폭증하기 시작하며, 그로 인해 거리는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마치 진리인 양 우리가 매 순간 접하고 있는 가상세계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일들이 꼭 일어나야만 하는 걸까요? 연재하는 기간만이라도 온라인이 평온했으면 바랐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에 그쳤습니다. 제가 짚었던 일들을 비롯해 다양한 이슈가 하루도 쉬지 않고 가상세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근절해야만 하는 오염된 커뮤니케이션 양상은 전염성을 띠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매우 질 나쁜 오염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수 모두를 급속도로 증가시키니 말이죠.
악플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유명인들은 매일 새롭게 갱신됐습니다. 당사자와 그 가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가 지금도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악플러들은 역시나 유명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가혹한 그들의 글은 누군가의 일상을 짓이겼습니다.
어쩌면 획기적인 일이 될 수도 있었던 '학폭 폭로 릴레이'는 거짓 정보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과거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른 이들도 있지만, 전혀 사실과 다른 허보로 그간의 경력 모두를 송두리째 날린 안타까운 사연도 속속 보도됐습니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정보 양산자들이 과연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피해에 걸맞게 처벌받기는 할까요?
세월호 7주기에는 또다시 사자명예훼손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익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 희생자들을 모욕하기 위한 목적의 대화방이 개설된 것이죠.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을, 그저 범죄에 불과한 일을 하기 위해 그들은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죄의식도 갖지 않은 채 그저 그들만의 유대를 강화하고, 재미를 좇는 야만적인 행위가 펼쳐졌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이번 보궐선거 역시 감정적이었고, 인기에 편승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떤 후보가 더 자극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가가 이슈의 중심에 섰죠. 표심을 사기 위한 저급한 유세 공작이었습니다. 어느 진영이 조금 더 낫다고 평할 수 없습니다. 그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했으니까요. 선진 정치는 아직 우리에겐 먼 일인가 봅니다.
저는 예언가도, 뛰어난 사회학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약 3개월간 연재하면서 이야기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말았습니다. 전혀 나아지지 않은 채 말이죠. 오히려 이 지긋지긋한 범죄들은 과거보다 더 악랄하게 변모했을 뿐입니다.
1년가량 취재하고, 브런치 연재를 결심하며 기대한 바가 있었습니다. 잘 풀렸다면 온라인 범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면서 캠페인도 펼치는 등 많은 일들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저 희망사항이었을 뿐, 진실하게 원했던 건 오로지 오염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악플을 주로 언급했지만 차별적 발언, 범죄에의 유혹, 극단적인 반목 등 모든 부분을 오염된 커뮤니케이션이라 칭했습니다. 악플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필요했거니와 굳이 '오염'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이유는 직관적이었습니다. 실제 환경 오염이 주는 피해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오염이라는 건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환경을 붕괴시킵니다. 환경이 붕괴된다는 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개체 모두들 병들게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주변 환경으로 전이되기까지 하죠. 우리네 온라인 환경이 그렇습니다. 이미 멍들 만큼 들었고, 많은 이용자를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오염에 직접 노출된 이들은 피폐해졌고, 그 기운이 현실 세계로까지 퍼지고 있죠.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이로운 환경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걸 이루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취재를 더 열정적으로 했더라면, 필력이 더 좋았더라면, 내가 더 영향력이 있었더라면. 짙은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여러 독자분들께서 3개월간 연재한 '제발 악플 달지 마'를 읽어주셨고, 이 문제를 공감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염두에 뒀던 목표는 달성한 셈이라고 할까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인지할 수 있도록 했으니까요.
글로 맺은 독자와 작가의 인연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독자분 중 누군가 혹은 그 지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온라인 문제를 공론화시켜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작은 인연이지만 이 인연이 큰 계기를 만들기를 희망합니다. 그 계기는 보다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한 걸음이 될 겁니다.
이렇듯 확신에 차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글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악플이라는 글의 한 유형이 부정적인 영향을 뽐내고 있는 만큼 그 이상의 긍정의 힘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종이 매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종이책의 향수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 역시 글로 맺은 인연이고, 제 뜻 역시 유튜브 등을 통한 말이 아닌 글로써 알렸습니다. 글이 주는 선한 영향력, 저는 믿습니다.
4월 22일은 정보통신의 날입니다. 계획대로 이날 마지막 연재분을 업로드합니다. 2021년 정보통신의 날을 계기로 더 나은 가상세계가 펼쳐지길 간절히 원하며.
결코 밝지 않은 글이었지만 꾸준히 찾아와 공감을 표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제발 악플 달지 마' 연재를 마치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첫 장에서 인용했던 드라마 '비밀의 숲' 내용을 다시금 강조하며 매듭짓겠습니다. 다시 한번 볼품없는 글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중략)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척할 정도로만 썩었다면 내 가진 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난다. 더 이상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 순 없다.
(중략)
부정부패(오염된 온라인 환경)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 십, 수 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뺐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 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