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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낙비 Feb 24. 2022

의미에 대한 단상

안그래도 괜찮아요. 꼭 그래야하는건 없으니까요.

새벽에 눈을 뜬다. 가만히 창가의 소리를 들어보곤 버스소리가 들리면 벌써 5시를 넘긴 것이다. 가끔 눈을 뜨면 2시이기도 하고 4시이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고 싶진 않다. 최대한 조용조용 휴대폰과 패드를 안방에서 꺼내들고 주방으로 나와 약 한 알이랑 물 반 컵을 마신다. 각 자의 방문을 숨구멍만 열어놓곤 주방등을 켠다. 이미 일어나자마자 엎드려 스트레칭 겸 아침의 감사함에 몸을 늘려 놓은지라 거실에 놓인 실내자전거에 몸을 얹어 브런치를 검색하면서의 10분가량을 보낸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냉수마찰겸 몸에 물을 바른 후 수건에 닦는다. (수건에 냄새나는건 귀신같이 알아챈다.) 사과를 반쪽 자르고 커피물을 데운다.


패드를 펴고 브런치를 읽거나 전자책을 간단히 들여다 보거나 지금처럼 글을 쓴다.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고 싶지않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 새벽녁 혼자만의 시간은 소중하며 산책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글감에 대한 생각들이 즐겁다.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의미있는 삶인걸까?


충동적으로 글을 올렸었다. 지난 월요일은 출장 겸 저녁식사로 술을 한 잔 했더랬고 충동적인 몇 가지 행동으로 마누라에게 욕을 먹었다. 오래 살 것같다. 대부분의 행동들을 마치 계획된 것처럼 일상속에서 규칙을 찾고 규칙을 만들고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색을 한다고 작가가 되야한다거나 인정을 받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규칙속 또 다른 압력으로 허덕이게 되는 게 삶의 방식일 수 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열정과 목적들은 상황이 종료하거나 에너지가 고갈되고 존재가 소멸하면 사라지는 법, 그때까지 반드시 부여잡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인생의 길이는 짧고도 길다. 의미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건 내 생각만이 아니라 과학이 종교가 삶의 역사들이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의미는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의 단어다. 그래야 살아진다고 믿고 그래야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가 합당해진다고 믿기 때문이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시간은 지나가고 인생이 시작되고 끝난다. 자연의 대부분은 그렇게 의미없이 나를 둘러 싸고 있고 사람들의 대부분도 그렇게 나와 이어져 있지만 나만 괜히 어줍잖은 의미를 부여하며 내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부여잡고 사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인생의 규칙을 정하지 않고 습관을 만들지 않고 관계속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일 것이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고 설겆이거리가 쌓이고 해야할 일들이 미뤄져 있고 마감시간을 다가오고 그렇게 불안함과 초조함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듯이 세상은 어지럽고 흐트러지고 불안해지는 것이 당연한데도 다시 정리하고 미뤄지고 마감시간이 다되어서야 전화를 붙잡고 노트북을 열고 일을 시작한다.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미리 정리하고 처리하고 깔끔하게 인생을 살고 싶고 의미를 부여해 날개를 달고 싶지만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상속에서 다시 머리를 쥐뜯으며 왜 그런지 자책하게 된다. 안그래도 되는데…


나의 직장 상사는 네덜란드 사람이고 나이가 70이 넘으셨고 다혈질이고 재혼하고 어린 아들이 하나 있다. 얼마전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고 자기는 삶의 마지막을 절대 병원에서 보내지 않으리라는 강박에 가까운 병원알러지가 있으시다. 대부분의 업무가 이 사람과의 관계와 대화, 협의를 통해서 시작되고 마무리되니 내 삶에서 막중한 역할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욕은 떨어지고 코로나이후 자의 타의로 자택 감금중인 나의 상사는 힘든 노년의 삶을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방황 중이다. 마지막 남은 의미와 의욕은 어린 아들에 대한 것 뿐이다. 그외는 부수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는 다시 삶의 방향을 찾아 나와의 채팅창을 열어보지만 감정이 뒤죽박죽이다. 어르고 달래서 오늘의 일을 끝내면 한 밤중이기도 하고 새벽에 다시 시작하기도 하지만 불평하진 않는다. 그렇게 나는 또 나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니까…


가까울 수록 관계가 순조롭지 못하거나 의미가 희미해 진다고 느껴지면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암울하며 방황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 있는 그 무엇도 나에겐 별 다른 감흥과 의미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산행 중 발바닥에 느껴지는 뾰족한 돌맹이 한 알이 세상 모든 근심보다 힘든 법인 것 처럼 현재를 정리하고 규칙을 정해서 불안과 혼돈에서 안정을 찾는 노력을 수천년 수만년동안 해오고 있는 것이다.


꼭 그래야하는 건 없다. 겨우 정리해 놓은 집안 거실과 주방 식탁은 금새 혼돈과 무질서로 변하듯 마음에 달려 있는 그 무엇을 외부에서 아무리 찾아봐야 결국 지치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고 세상을 충동과 현재의 만족만으로 살아가기엔 질서, 양심과 관계속에서 미친놈이 되기 상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조용히 나만의 자리를 찾아서 최대한 적게 움직이고 아프지 않게 충격받고 의미따위는 개에게나 줘버리고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젠장, 글쓰다가 커피물이 다 식었다. 의미없는 한 편의 글따위로 나의 커피시간을 지나쳐버리다니…갑자기 내가 조르바가 된 것 같다.

‘자자 커피나 한 잔하고 홀가분하게 인생을 보내자고요 춤이나 춥시다. 산토르를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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