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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기타 Sep 14. 2023

특별한 당신

   홍콩에 사는 처남 아들 결혼식에 다녀오기로 했다. 누구보다 친손자 결혼식에 가고 싶으실 장인 장모님이나 구순이 넘은 고령으로 가지 못하기에 두 분 몫까지 하여 아내와 함께 가기로 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당연히 간다고 했다. 얼마 후 양가 합의로 간소한 결혼식을 하기로 했으니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처남의 연락에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결혼식 열흘 전쯤 그래도 꼭 가보라는 장모님의 당부가 있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지난해 가을 홍콩 아들네에서 한 달 넘게 머무시는 동안 예비 사돈의 초대로 식사도 함께하며 인사를 나누었기에 결혼식에 안 가도 되지만, 나와 아내는 가족을 대표하여 다녀오라는 것이다. 처남 쪽에서 보면 마지막 혼사이고 두 분 수발에 다소 지쳐있는 아내에게 바람도 쐬게 할 겸 처남과 통화 후 부랴부랴 비행기 표를 마련하였다.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 다음 날부터 아내는 여행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처남은 몸만 오라 했으나 처남댁으로부터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몇몇 혼사 용품을 부탁받은 데다 하나뿐인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아내가 그냥 갈 리 없었다. 쇼핑 품목을 빼곡히 적은 메모지를 들고 평소와 달리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며칠 동안 한복집, 인사동, 재래시장 등 이곳저곳을 바쁘게 다녔다. 출국 이틀 전까지 사들인 것과 장모님 정성이 담긴 크고 작은 플라스틱 반찬 통과 건어물을 포함한 여러 식품이 커다란 여행용 가방 두 개에 가득 찼다. 기내 반입이 허용되는 가방에도 가득 채웠으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출국 전날 걸려온 장모님과 통화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커진다. 양념에 잰 한우 불고기 거리와 겉절이김치를 가져가라는 장모님의 주문 때문이었다. 부탁받은 물품과 이미 챙겨주신 밑반찬 등을 담은 용기로 가방에 들어갈 데가 없다고 하는 아내와 그래도 가져가라는 장모님과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한우는 워낙 비싸 선뜻 사 먹기 어렵다는 말에 준비하신 것이고 겉절이는 내가 김치를 좋아하니 가 있는 동안 먹으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내와 통화한 처남은 이곳 마트에도 다 있으니 제발 이것저것 보따리 챙겨 오지 말고 편하게 그냥 오라했으나 결국 장모님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우리 엄마 저 고집을 누가 이겨.' 하며 비닐로 겹겹이 둘러싼 한우 불고기 통과 김치통을 넣느라 가방 속의 짐을 다시 풀어 정리하는 아내의 넋두리에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는 속마음이 묻어있었다. 나 또한 가족이 외국에 있고, 오래전 청주 근무 시절 고속버스로 내려오실 때마다 양손에 먹거리 보따리를 챙겨 오시던 어머니에게 ‘뭐 하러 이런 걸 챙겨 오시느냐. 다음엔 제발 그냥 오시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엄마가 있는 아내가 다소 부럽기도 하나, 장모님이나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편하게 다녀가라는 처남과 먹거리 하나라도 더 보내주려는 장모님의 한판 겨루기의 결과는 장모님의 판정승으로 끝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국력 신장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이다. 세계 곳곳의 주요 도시에는 한식당과 한국 식품점이 있고 웬만한 대형 매장에는 한국식품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김치, 라면, 햇반 등 주요 식품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런 현상은 누님이 있는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발효식품이 많은 K푸드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후 전 세계적으로 한국식품과 한식 애호가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한우는 그 뛰어난 맛과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홍콩에서 가장 값비싼 식품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보다 비싸긴 해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굳이 가져오지 말라는 게 처남의 입장이다. 아들인들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대하는 게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만 그것보다 모처럼의 여행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지켜보는 나로선 어차피 정해진 승부이고 불 보듯 뻔한 결과이기에 아내에게 알아서 하라고만 할 따름이다. 자식에게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우리가 아닌가. 이미 회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먹고사는 데 걱정할 게 하나 없는 아들이지만, 구순이 넘은 엄마의 눈에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챙겨주고 싶은 내 새끼, 내 자식일 뿐이다. 그런 장모님의 단순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이 정겹기조차 하다.


  앞으로 저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자식과 희로애락을 함께하심은 분명 축복이다. 살아 계시기에 가능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스럽고 정겨운 실랑이가 틀림없다. 장모님의 마음에야 비할 수 없으나 하나뿐인 동생에 대한 아내의 은근한 마음도 이에 못지않다. 장모님처럼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둔 아내 또한 자식에 대한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을 가진 엄마는 보통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엄마이기도 하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의 끝자락에 계신 당신이다. 언젠가 그런 엄마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는 그때가 오면 나에게 아주 특별했던 엄마, 특별했던 당신으로 처남과 아내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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