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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한 건 아닐까

by 고진예 Mar 13. 2025

종민이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방문이지만, 무척 오랜만이라 느껴진다. 신간책이 나와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사도 드릴 겸 책을 한 권 챙겨갔다. 종민이는 어제 집 근처의 온리원태권도를 등록하여 한껏 기분이 들떴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종민아, 무슨 일 있니?”

“엄마, 나 오늘 태권도 학원에 두 시부 가도 되요?”

“왜?”

“서원이가 두 시부 간대요. 친구도 데려 간대요.”

“그렇구나. 그래 잘 다녀와.”


종민이는 어제 밤부터 태권도 하복 상의를 세탁해달라고 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세탁이 안 되어 있는 하늘 색 상의를 입고 밤색 태권도띠를 허리춤에 매고 씩씩하게 가방을 맨다.


“종민아, 아직 8시도 안됐어.”

내가 말할 새도 없이 종민이는 형을 따라 나서며 현관문을 닫는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후 하교할 시간이 되어 콜랙트콜로 전화가 온 것이다. 오랜만에 태권도학원을 가니 신난 듯 하다. 태권도 학원에 다녀와서도 계속 기분이 들떠 있다.


“엄마, 내가 오늘 차렷, 열중 쉬어, 차렷, 관장님께 경례를 하고 친구들이 뒤에서 태권이라고 구호를 외쳤어. 내가 아이들 맨 앞에 서서 했어.”

“와, 종민이가 반장이 됐구나!”

“엉, 관장님이 내가 관장님도 잘 도와줘서 나를 믿으니까 반장이 되서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라고 하셨어.”

“멋지다. 종민이가 관장님을 많이 도와드려야겠네. 책임이 막중하네.”


종민이는 온리원태권도가 새로 오픈하기 전부터 골목을 오가며 관장님과 인사를 나눠 익숙하다. 종민이는 반친구인 서원이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다고 알려주었고 흰 띠라고도 알려주었다. 관장님은 종민이가 전에 다니던 태권도학원에서 밤띠였다는 것을 알고 밤띠를 착용하도록 해주었다. 


“엄마, 학원에서 내가 띠가 제일 높아. 서원이도 흰 띠야. 내가 제일 쎄.”

“어머, 그렇구나.”


이제 전 태권도장에서 게임을 하다가 들켜 학원을 못 다니게 되었던 기억을 깔끔하게 씻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종민이는 자존심이 상했던 듯 전 태권도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이제 전 태권도 학원을 배신하고 온리원으로 간다!”

“종민아, 학원은 다니면서 바꿀 수도 있는 거야.”


종민이는 자신이 전 태권도학원은 그만둘 수 밖에 없었지만, 다시 온리원태권도를 다니게 됐다는 사실을 반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오후 3시 반이 되어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남편과 나와서 학원에 종민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오랜 만에 병원에 도착해서도 종민이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쪽 책장에 가서 엎드려 누워 그림책을 읽는다. 


“엄마도 읽어봐. 재밌어.”

그림책을 재빨리 읽으며 자꾸 내 옆에 쌓아둔다. 

“나종민~”

“종민아, 가자.”


진료실에 들어가자 원장님이 반갑게 웃으며 종민이를 맞아주신다. 


“종민이 잘 지냈니? 어떻게 지냈니?”

“잘 지냈어요.”


종민이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돌려 하늘 색 운동복 등판에 새겨져 있는 ‘온리원태권도’ 로고를 보여준다. 


“태권도 다녀요!”

“그렇구나.”


종민이는 두 팔로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며 눈썹을 치켜올리며 사나운 표정을 지어보인다. 


“학교에서는 잘 지내니?”

“네, 학교에서 친구들이 제가 유명하대요.”

“그래, 왜?”

“모르겠어요. 다른 반 아이들도 제 이름을 다 안대요.”

“그렇구나.”

“내가 친구들 싸우면 옆에서 말리고 화해시켜요.”

“선생님 말씀은 잘 듣니?”

“네, 모범생이예요.”


원장님은 종민이의 대화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신다. 종민이가 진료실을 나가고 원장님은 종민이의 들떠 있는 모습을 염려하신다.


“종민이가 오늘부터 태권도에 다니게 되어 좋아서 저럽니다. 괜찮아요.”     


사실, 종민이는 많이 나아졌다. 더 이상 종민이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종민이와 관련된 문제로 전화가 오는 일은 없다. 종민이는 학교에서 공부도 썩 잘 하고 선생님은 종민이의 어휘력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이들과도 잘 지내며 가끔 힘 자랑을 하지만, 폭력적인 수준은 아니다. 가정에서는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낸다. 가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엄마에게 틱틱거리거나 말대꾸를 계속 하기도 하지만, 내가 한 마디 하면 곧 분위기를 전환하려하거나 자신의 말대꾸나 시비를 멈춘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레고쌓기나 레고로 도로 건설하기, 꾸준히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탐독한다거나 비록 학교숙제이긴 하지만 독서록과 일기를 작성하고 무서워하지 않고 잘 자고 식사도 잘 한다. 물론, 아직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이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종민이의 정서는 작년과는 큰 차이가 날만큼 안정되어 보인다. 원장님은 미소를 지으신다. 


“종민이가 요즘 어떤가요.”

“예, 좋습니다. 종민이는 동네에서 유명해요. 모든 분들게 인사를 하고 다녀요.”

“호호 종민이가 가지고 있는 관종의 특성을 인사로 승화시켰군요.”

“맞아요. 종민이는 인사를 하다가도 인사를 못 받는분들께는 계속 인사를 하곤 합니다.”

“어머니, 종민이의 정서가 나아진 가장 큰 원인이 뭘까요.”

“가장 큰 것은 규칙을 지키는 가정 환경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규칙이 있었나요.”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 초반에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랄까, 학원에 못가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지금은 없어졌어요. 잘 지냅니다.”


원장님은 갸우뚱하신다. 


“원장님, 요즘 들어 생각하는 건데요. 종민이가 바뀐 게 특별히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바뀐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는 낯선 아이였기에 행동 하나가 예민하게 받아들여져서 마찰이 많았다면, 지금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아이와 함께 있는 환경이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해요.”     


그렇다. 내가 변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부딪치며 모난 돌들이 부드러워지고 서로 퍼즐이 맞아가듯이 그렇게 서로에게 조심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 서로가 싫어하는 것은 피해 가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종민이는 약을 먹지 않는 날이면 유난히 개구지고 말대꾸의 빈도가 많아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지만, 작년에 비해 충동적 행동은 자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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