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꿀밤부터 손바닥, 엉덩이, 종아리.. 심하면 뺨까지 얻어맞았던 90년대 학창 시절. 때로는 ‘사랑의 매’라는 용어로, 체벌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체벌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무서웠고, 아팠고, 맞기 싫은 감정뿐이었다. 마흔이 다다른 지금, 선생님의 마음을 모두 헤아려 볼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 역시 사랑으로 회초리를 들진 않았을 것 같다. 사랑보다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확실히 체벌이 심했던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 눈치를 봤다. 수업시간에 조용했고, 선생님의 말도 곧잘 들었다. 선생님이 좋거나 그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맞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다. 잘못했으면 벌 받는 게 당연했고, 맞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체벌이 잘못됐다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2012년 3월 직접 체벌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체벌처럼 지금도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관습과 관행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 그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지 않은 이들 덕분에,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 당연시됐던 열정 페이와 계약 문제 등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지금 학교에서는, 체벌 대신 벌점 제도를 도입하고 청소나 반성문 등으로 벌을 대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이 왜 잘못됐고, 왜 하면 안 되는지 이해시키고 공감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 지각하면 안 되는지,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왜 공부를 하고 왜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말이다.
물론, 어렵고 번거롭고 난해한 일이다. 내가 선생님이 아니어서,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각각의 과목마다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고, 인생의 자양분이 될 지점들이 있는데, 그러한 인식 없이 진도 나가기 바빴고 시험 문제만 암기하기 바빴다.
만일 당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그 당위성을 이해했다고 해도, 그만큼 공부를 더 잘하지 못했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인생과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고, 같은 점수라도 더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거짓된 사랑의 매와 달리, 조금은 진짜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