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하루 전 부당 해고를 당한 날, 그들에게 공식입장을 요청하는것과 동시에 바로 이직준비를 했었다.
전에 글에서 말했듯, 부당해고 다음날이 주말이라 연락이 안 올 것이었기에, 그 정신없는 와중에 이직 준비에 몰입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내 경력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만 9년을 채운 10년차였다. 첫 회사는 7년, 두 번째 회사는 2년 반을 다녔고, 두 회사 모두 신의직장이라 불리는 워라밸을 가졌었다. 두번째 회사를 오래 다닐 생각이었던 내게, 아이의 출생에 의한 경제적 부담이 걱정될 즈음, 날 부당 해고한 회사는 거절할 수 없는 연봉과 근무환경 및 직책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나면 와이프가 육아휴직 후 회사를 못 다닐 수 있었고, 커리어적으로 도전 하고싶은 계통과 직무였기에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했었다. 그 결과가 현재 이 상황을 만들줄 그 누가 알았을까. 법원 판례를 찾아봐도 글로벌로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에서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직원을 정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면접 합격 후 오고가던 메일과 소통에서 뭔가 회사가 부산스럽고, 체계가 없어보이는 포인트는 많았으나, 생긴지 5년이 안된 신생 회사였고, 그런 체계를 글로벌적으로 잡는 직무를 할 것이었기에 이런 상황까지 올거라는 걸 예상 못한 내 잘못이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생각들이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구직 얘기로 돌아가서, 부당 해고당한 사람이 제정신일 수 있었겠는가, 카페에서 나의 직무와 같은 자리를 뽑는 회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력서를 보냈다. 생소하고 모르는 계통의 회사도 제외하지 않고 모두 제출하였다. 나의 커리어건 뭐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력서를 내며 주말이 지나갔고, 월요일이 되자 몇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피드백이 월요일이 되자마자 온 회사들은 채용의 목적이 공통점이 있었다.
1. 나의 커리어가 본인들 회사의 필요한 직무 및 자격이 일치하면서, 당장 ASAP로 충원이 필요하던가
2. 회사의 낮은 인지도로 원하는 지원자의 스펙이 변변치 않아, 큰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사람을 원하던가
3. 스타트업에서 당장 회사를 함께 꾸릴 열성적인 경력자를 뽑던가
월요일에 바로 연락이 온 회사는 총 3곳으로, 스타트업, 신생 Saas회사, 그리고 마지막 한 곳은 전에 다니던 회사와 유사한 업계였다. 유사업계 회사는 HR 스크리닝 콜이 당일에 와 바로 1차를 봤고, 2차 국내 대표면접도 잡혔다. 많이 급한 모양이었다. 1차를 패스하자마자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고, 짧게 통화를 마치고, 이틀 뒤 회사에 방문하여 대면면접 시간을 가졌다.
대표는 젊었고, 글로벌 1위인 업계 회사를 한국에 설립한지는 4년이 채 되지 않았었다. 업무 역시 내가 줄곧 해오던 업무였기에 대표의 마음엔 내가 적격이었는지, 면접은 2차, 3차, 4차까지 1주 만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힘든 시간을 빨리 벗어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커져갔고, 이 회사를 다니면서 그 회사와 싸우면 된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마음도 잠시 진정이 되었었다.
4차 면접 후 합격 통보를 받고 연봉 및 근무조건도 내 예상보다 높고 좋게 제시를 받았다. 최종 오퍼메일이 내가 도착하자마자 대표의 전화가 왔다.
"전에 말씀드린거,, 고민은 해보셨나요?.."
그랬다. 이 회사는 한국에 사업자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은 하지만, 나의 소속은 해외가 되는 시스템. 이에따른 가장 큰 문제는 회사에서 국민 4대보험가입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면접이 진행 될동안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리스크를 세무사 친구에게 확인중이었다. 전화가 온 대표에겐 며칠 시간을 달라 요청하고, 세무사 친구와 통화를 하였다. 친구가 설명하기를
"너가 가진 자산에 따라 건강보험료가 책정되고, 회사에선 이를 부담 안하기 때문에 몇백 만원이 나올수도 있어. 이거는 꼭 알아야되고. 내 생각엔 그 돈보다 너 고용보험이 없으니까 해외본사에서 너 해고시키면 한국에서 부당해고나 실업급여 관련해서는 구제를 못 받을거야. 결론적으로 좀 위험해보이긴 한다."
보험료 부분도 컸지만, 이미 부당해고를 경험한 나였기에 친구의 설명 뒷부분이 더욱 겁이 났다. 고민끝에 대표에게 연락하여 입사 거절 의사를 밝혔다. 거절 의사를 밝인 나에게 대표는 올해나 내년엔 사업자등록을 할거라고 얘기했지만, 구체적인 계획도 아니었고 나를 잡기위한 미봉책으로 느껴졌다. 결론적으로는 이 회사의 오퍼를 고사했다. 대표도 아쉬워했지만, 작은 리스크가 아니었기에 이해한다는 반응이었고, 추후에 좋은기회에 보자는 얘기로 대화를 마쳤다.
이렇게 부당해고 뒤 바로 진행된 회사와의 이직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1,2,3,4차까지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며 에너지를 쏟은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했지만, 추후에 나에게 맞는 회사가 나타날거라 믿으며 멘탈 관리를 했었다.
이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에, 감사하게도 몇몇 회사의 연락이 추가로 도착했다.
다음으로 내가 면접을 결정한 회사는, 어플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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