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인권의 결합
오늘 얘기해 볼 책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김초엽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입니다. 3급 청각 장애를 지닌 몸으로 포항공대 생화학 석사를 받았고, 소설가로 데뷔하셨거든요. 이런 경험들을 듬뿍 살린 책이 오늘 얘기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7개의 소설 모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과학기술을 다루고 이와 관련된 철학적 이야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적 이야기들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맞닿아 있죠. 현대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미래와 과학기술을 빌려서 더욱 폭넓게 고민해 보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잘 와닿지가 않죠. sf소재와 현대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 무슨 소리야?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드려서 독자 분들의 이해를 도와보겠습니다.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은 안나라는 사람입니다. 안나가 사는 시대에는 워프 항법이란 기술로 우주 행성 간의 이동이 비교적 원활하던 시대였습니다. 안나는 워프 항법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가족과 떨어진 행성에서 살고 있었죠. 그런데 안나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웜홀이란 것이 발견되어 워프 항법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워프 항법과 관련된 모든 지원과 운행을 줄여나가게 됩니다. 문제는 안나의 가족이 사는 곳은 웜홀이 없기 때문에 워프 항법이 없으면 갈 수가 없는 곳이었죠. 그리고 안나의 프로젝트 마지막 날과 안나의 가족에게 갈 수 있는 마지막 우주선 운행 날짜가 겹치게 됩니다. 안나가 어떤 선택을 했고 결말이 어떤지는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우주 항해라는 미래 기술을 통해서 현대의 it기술에서 소외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죠. 조부모님, 부모님들, 나 자신조차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고 소외되는 장면들을요. 김초엽 작가는 이런 소외받는 이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 줍니다. 다른 6개의 소설에서도 말이죠.
이 책의 좋은 점은 이렇게 우리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하는 것을 훈수하거나 강제로 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한 sf소설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기술과 개념들이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쉽게 이해할 수가 있죠. 문과 그 자체인 제가 이해했으면 말 다한 거죠ㅎㅎ
이 책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인가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힘듭니다.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썼다고 하더라도 소재 자체가 가지는 특이성, 미사여구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단조로운 문체 등의 단점도 명확하거든요. 하지만, 가끔은 순문학이 아닌 다른 맛의 문학도 맛보고 싶은 분들, 뒤를 돌아보고 남겨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